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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의학 침술로 부활하라(뉴스메이커 특집기사)
작성자 희상주의 (ip:)
  • 작성일 2007-06-07 11: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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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침으로 부활하라!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정년없는 고소득 전문직종. 보약을 지어 파는데 안주한 한의학.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고의 한가운데 섰다.

전통침의 재발견과 표준화를 통해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는데…

위기의 한의학을 되살릴 방안은 없는 걸까?

경락이 표시된 목각인형. <김재구 기자>



한의학이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의학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고의 한가운데 있다.

좋든 싫든 세계화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한의학 역시 이 도전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다.

바로 이 접점에서 위기와 기회가 양날의 칼처럼 한의학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세계 시장을 먹느냐, 아니면 세계 시장에 먹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얘기다.

의료시장 개방은 어제 오늘의 화두가 아니다.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실상이다.

한의사 시장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한의사가 한국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한의대를 졸업해 닥터 면허증을 지닌 외국인 한의사가 한국 한의사 시험에 합격하면 국내 활동이 가능하다.

자격 미달로 간주된 미국의 침구사들은 제외돼 있기 때문에 한·미 FTA 협상에서 이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개방

설사 한의사 시장 개방이 미뤄진다 해도 결국 올 것은 오고야 만다.

무한정 개방의 시기를 늦출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의료시장이 완전 개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년이 없는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보약을 지어 파는 데에만 안주해서는 한의학의 미래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 확실하다.

세계적으로 전통의약에 대한 시장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1998년 850억 달러에서 2002년 1000억 달러, 2006년에는 1500억 달러로 증가했다.

 

WHO 보고에 따르면 서구, 북미 인구의 50% 이상이 전통의약 이용 경험이 있다.

고령화 사회가 더욱 진전되고 만성·난치성 질환의 치료가 의학계의 핵심 테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 전통의학의 장래는 어둡지 않다는 것이다.

한의학계 내에서는 현안이 되고 있는 의료시장 개방 문제도 세계 시장 확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적극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형주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은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한약 제품과 한방 의료기기 등의 연구와 개발에 집중 투자해 국내외 시장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학 치료는 첫번째가 침술

한의학의 위기를 전통침의 재발견, 표준화를 통한 세계화로 돌파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력히 개진되고 있다.

정부 투자 한의학 연구소인 ‘한국한의학연구소’는 최근 ‘침구경락연구 거점기반 구축사업’을 적극적으로 드라이브하고 있다.

 

한국 침구치료기술의 효능검증과 기전연구를 통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여 한국 침구학을 세계화하기 위한 연구 수행이다.

▲임상 실태조사를 통한 우수한 한국 침구치료기술을 발굴하고

▲그 효능 검증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며

▲임상시험을 통해 침구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평가 연구를 하며

▲치료기전규명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최선미 의료연구부장은 “한의학의 발전은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규정하며 침구학을 한의학 치료의 으뜸으로 간주했다.

한의학의 치료는 첫 번째가 침이고 두 번째가 뜸이며, 다음이 약이다."

 

"침구치료는 경락의 경혈을 자극하여 치료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한의사와 침·뜸만 있으면 되는 경제적인 치료방법이다. 임상효능에 대한 검증과 기전 규명 연구가 뒷받침되어 경혈 자극에 과학적 데이터가 축적돼야 한다. 침구학의 발전을 통해 한의학의 진단·치료분야는 획기적으로 현대화할 수 있다.”

대전대 한의학과 홍권의 교수(침구학)는 “한의학에서 침술은 저비용 고효율, 부작용이 없다는 점에서 한의학 고유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분야”로 규정했다.

홍 교수는 그러나 “한국에서의 광범위한 침술 보급에도 불구하고 침구학의 논문이나 새로운 연구 성과는 미국, 유럽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침술에서의 연구 성과가 미흡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침구학의 트렌드가 중국의 ‘변증요법’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증요법’이란 예컨대 ‘어떤 혈에 침을 놓으면 요통이 사라진다’는 식의 치료술이다.

 

요통의 다양한 원인에 대한 고찰보다 혈의 위치와 병증의 관계를 파고드는 침술이라는 얘기다. 홍 교수는 연구 성과의 풍성함이 치료술 자체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구 사회, 특히 미국 쪽에서는 침술을 아직도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한의사 전원이 침술을 연구하고 직접 진료에 활용하지만 미국의 경우 연구자와 침구사는 엄격히 분리돼 존재한다. 일상적으로 침을 활용해 우수한 임상 실적을 거두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침구술이 탁월하다.”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 중국의 중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이 세계시장에서 동양의학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중국인은 우선 중의와 중약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생각한다.

국민보건에도 중요하고 산업적 차원에서도 잠재력이 엄청난 분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50년대부터 중의학의 발전을 위해 서양의학과 동일한 정도의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연구열도 대단히 뜨겁다.

한·중수교 직후인 1992년 9월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 학부과정을 졸업한 뒤 석·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인근(金仁根·44) 박사.

그는 중의사면허시험(中醫職業醫師資格考査)에도 합격해 중의사 자격을 딴 중국유학 1세대다. 그는 중국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마치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었다. 오전수업 4시간, 오후수업 4시간으로 한마디로 강행군이다. 명색이 대학이라지만 한국의 대학에서 흔한 축제도 없다. 교수가 강의를 하는데, 첫 시간에 들어오자마자 교과서 진도를 나간다. 어떤 교수는 자기 이름 소개도 안 하고 진도부터 나간다. 그래서 한 번은 첫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 성함이 뭡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냥 칠판에 이름만 쓰고 나갔다. 물론 수업시간에 농담도 거의 없다.”

중국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이렇게 타이트한 이유는 가혹한 평가제도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학생이 교수를 평가하는 제도가 있다.

예컨대 어떤 교수가 상을 당해 이틀 간 결강했다면 결강한 수업을 반드시 보충해야 한다. 학생이 학교측에 투서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므로 학교 안에서 수업하고 먹고 자고 다시 수업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동양의학 대표브랜드는 중의학

중의약대를 졸업한 한국유학생에 대해 한국 내에서 한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귀국해도 배운 것을 활용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대개 제약회사에 취업한다든가 경동시장에서 일을 한다.

아예 전업한 유학생도 많다. 중국어학원 강사나 무역업 등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한국 한의학계의 폐쇄성을 이렇게 질타한다.

“실력 면에서 볼 때 유학생 출신이 국내 한의과대학을 나온 사람과 겨루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다만 국내에서는 한의대 입학하기가 무척 어려우니 중국유학은 쉽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똑같은 자격을 주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이다. 결국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한의업계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

2000년 이후 한의사의 숫자가 이미 포화상태라는 지적이 업계 내부에서 일고 있다.

현재 1만6000명 정도의 한의사가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년 800명 가량의 졸업생이 배출되며 이들의 99% 이상이 한의사 면허를 취득한다.

중의학을 전공해도 15% 정도만 합격하는 중국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다.

업계에서는 외국에서 3000명 정도의 한의사만 몰려와도 한의학계는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 한의대는 커리큘럼만으로는 학생들의 연구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침구학의 경우에서도 교수진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수의 한의대생이 방과 후 유명 한의사를 찾아가 침술을 배우거나 원전을 공부한다. 방학이 되면 한 달씩 동아리를 조직해 ‘동의보감’을 공부하고, 학교 게시판을 통해 모인 일행과 함께 합숙 스터디 MT를 떠나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1950년대 이후 전통의학 자원 확보와 중약사업 관리를 강화시키는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구체적인 정책 실천으로 중의의 의료서비스 체계를 정비하고 중약을 현대화하는 노력을 지속했다.

중의학이 세계 전통의학계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중의약 교육을 개혁하고 과학기술을 도입한 연구발전에 투자하고, 대외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한국한의학연구소 최선미 의료연구부장은 중국 중의학의 현 단계를 이렇게 진단했다.

“중의학계는 중의학의 이론을 보급하기 위해 이론서의 영역화를 시도했다.

민간 차원의 학술교류와 정부 대 정부의 협약 강화로 중의 이론서가 세계 각국의 교육기관에 제공된 것이다.

수많은 중의 의료 인력이 세계 의료시장 현장에 진출하였으며, 각국의 의료인이 중국에 유학와서 중의학을 교육받을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개혁했다.

중국의 침구학은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타임스 기자인 제임스 레스턴이 수술 후 복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중국 의사들이 침을 사용하는 것을 기사화했다.

이 기사가 회자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중의학 연구 붐을 일으켰고 많은 세계 의료인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동양 전통의학의 기술을 보급받게 됐다.”

한국 한의학의 세계화는 아직 요원하다.

우리 한의학의 국가경쟁력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갈 길이 매우 멀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의학의 경쟁력이 ‘근거 중심 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 EBM)으로서의 토대를 충분히 확보했는가의 여부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거 중심 의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 성과가 축적돼야 하는데 국가의 정책적인 투자는 아직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한의학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여전히 기본적으로 학문이 유지될 수 있는 정도의 투자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수준이다.

한의학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고 의료기술 향상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한의학의 세계화는 그 시기를 앞당기기 어렵다.

한중일 3국 침놓는 자리도 달라

근거 중심 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전통과 현대의 과학기술을 결합해야 한다.

한의학의 진단·치료 기술의 표준화와 과학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WHO(세계보건기구) 전통의학 자문관으로 임명된 최승훈 교수(경희대 한의대)가 이 분야에 독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 교수는 한의학의 전통 침술이 신경계통과 통증질환 치료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전통의학을 활용하는 국가 간 상호교류가 적어 세계화에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의학 용어의 한자 및 영어표기 통일과 학술용어의 표준화 작업에 착수했다.

“한방의 핵심분야인 침구혈만 놓고 보더라도 한·중·일 3국이 침을 놓는 자리가 다르다. 용어 통일과 함께 각종 진단과 처방에 대한 표준 제정작업이 절실하다.”

작년 11월 일본 쓰쿠바 시에서 열린 ‘경혈부위 국제표준화 공식회의’에서 이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회의에 참석한 3개국 대표들은 침구학의 고전으로 서기 3세기에 편찬된 중국의 ‘침구갑을경(鍼灸甲乙經)’ 등을 참고로 표준화 작업에 착수, 3년 간 격론을 벌인 끝에 기본적인 합의를 이루고 경혈의 국제표준화를 정식 채택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한·미 FTA 협상에서 불거진 한의사 시장개방 논의를 계기로 한방의 과학화·세계화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2002년 1000억 달러에 불과했던 세계 대체의학 시장이 내년에 2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올해 한방치료기술 예산으로 80억 원을 지원하는 등 오는 2010년까지 한의학 연구개발(R&D) 등에 1471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 39억 원을 들여 공공의료기관에 한방진료부를 설치하는 한편, 뇌혈관 질환(중풍·치매) 등 만성 난치성 질환 치료에 한의학 이론을 적용 연구하는 기관에 30억 원의 출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향후 한·중 FTA로 중의학이 한국시장에 진출할 경우에 대비해 한의학 경쟁력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보고 내년 개교 예정인 국립한의학전문대학원(부산대)의 조기 활성화 방안을 찾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 정책만으로 한의업계의 위기가 타파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갈수록 뛰어난 인재들이 한의사를 지망하고 있지만 정작 순수학문으로서의 한의학 연구에 대한 열정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경희대 최승훈 교수는 “후배들의 한의학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이 중요하다. 한의사가 된 후 단 열매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연구에 전념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외부의 위협을 문제삼기 이전에 내부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한기홍 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2.동의보감에 의해 침구술 집대성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조선시대 들어와 의술로 체계화… 1962년 국민의료법 개정 때 침구사 규정 삭제
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침구 관련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 여성 환자가 침을 맞고 있다.


기원전 3000년께 시작됐다는 침구술(鍼灸術)이 한반도에 개화한 것은 고구려 시대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또 일부 역사서 등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의술로서 체계화된 것은 조선시대인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세종은 1438년 침뜸전문생을 매년 3명씩 선발해 전의감과 혜민국, 제생원 등 삼의사에 한 명씩 배속시킨 것으로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내부병원’에도 침의 배치

하지만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침구전문의 제도가 완성된 것은 성종에 이르러서다. 성종은 1472년 의학권장 10조를 정하면서 침구 전문의를 설치했다. 또 성종 16년(1485년)에 완성된 조선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에는 의과취재에 침구 분야와 약제 분야를 분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침과 약제에 대한 구분을 분명히 해 전문적인 의술로 체계화시킨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명의인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과 허임이 지은 ‘침구경험방’에 의해 침구술에 대한 이론이 집대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을 이용한 벌침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경향신문>

19세기말 들어서도 이 같은 침뜸과 약제의 전문화는 계속되었다. 1889년 설립된 ‘내부병원’의 직원 중에 ‘침의’(鍼醫)를 배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1890년 내부병원의 관제를 변경할 때도 광제원에 대방의 3명, 침의 1명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식민지하에서도 침구술은 비교적 활발했다.

특히 일본에서 건너온 ‘침뜸의사’가 늘면서 이를 제도화하기에 이른다.

1914년 10월 조선총독부는 안마술과 함께 침술사의 자격에 대한 규정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또 탕액을 중심으로 한방의료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당시 ‘의생’이라고 불렸다.

1913년 의생규칙이 발표된 후 1년 만에 이들에게 의생면허증을 발급했다.

1944년에는 안마술, 침술, 구술영업자에서 침사(鍼士), 구사(灸士), 안마사(按摩士)로 명칭을 고쳤다가 해방 후 1951년에 마련된 국민의료법에는 침사와 구사를 의료유사업자로 규정했다.

한편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 등은 의료업자로 규정했다.

1960년 4·19 이후에는 ‘의료유사업자령’과 ‘침구사자격시험규정’을 제정했지만 결국 자격시험은 실시되지 않았다.

1962년 국민의료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의료유사사업자에 관한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침구의사제도 부활 전통 계승해야”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침구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현재 80여 명뿐이다.

이마저도 대부분은 80대, 90대 나이의 고령이어서 지금은 50여 명 정도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밖에 3만여 명의 무면허 침구사들이 자격증 제도의 부활을 꿈꾸며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대한침구사협회 김상배 사무총장(74)은 “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가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침구 전문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면서 “침구술을 전문으로 하는 ‘침구의사제도’를 부활해 전통문화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침구는 적은 비용으로 환자를 치유할 수 있다는 장점과 부작용이 거의 없어 생활의학이 될 수 있다”면서 “침구의사의 명맥이 끊기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방다이어트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경향신문>

한국전통의학연구소 임성무 연구실장(67)은 “침구술에 대한 놀라운 효과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왔다”면서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침구술을 배워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생활의학의 사례를 일본의 침구사제도를 통해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일본의 경우 손목이 삐거나 어깨가 결리는 등의 치료에는 침구술이 동원된다”면서 “노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일본은 침구술의 천국”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한의사 제도가 없다.

대신 침구술이 발달되어 있어 침술은 대부분 침구사가 활용하고 있다.

일본이 침구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는 침구사 국가시험 주관기관인 ‘동양요법시험연수재단’의 설립취지문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설립취지문에서는 ‘고령화 대책을 동양요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일본에서 동양요법은 침과 뜸 그리고 안마, 마사지, 지압 등을 말한다.

현재 일본에는 3년 이상 과정의 침구 전문가 양성 기관이 130여 개에(2003년 현재)에 달하고 침구전문대학은 2001년 38개 학교에서 2003년에는 60여 개로 크게 늘었다.

특히 일본은 ‘침구의 활용분야가 21세기에는 한층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 침구치료의 확대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침구치료 분야도 신경운동기계과를 비롯해 산부인과, 정신보건, 노인보건, 산업보건에 이르기 까지 크게 확대하고 있다.

북한 주체의학 확립에 큰 관심

한국, 일본과 함께 동양침구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도 정부차원에서 침구술에 적잖은 관심을 쏟고 있다.

1972년 2월 ‘죽의 장막’을 허물게 했던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도 중국 침술이 한몫한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침술’은 중국 의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동양의학의 필수품인 각종 침.

‘침구술’에 대한 관심은 북한도 크다. 풍족하지 않은 의료시설을 침구술로 다스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해방직후 전통의학(동의학)을 이론적 체계를 정립해 주체의학 확립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북한은 ‘국립동의학과학원’이라는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전통의학 연구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국립동의학과학원’에는 5개의 연구소(동의학기초이론연구소, 전통약학연구소, 침구연구소, 전통동의내과연구소, 전통의학외과연구소)와 8개의 연구실(민속의학연구실, 고전자료연구실, 진단연구실, 의료기기연구실, 생약연구실, 한약연구실, 전통의학치료연구실, 비약물치료연구실)이 있다.

북한의 보건의료수준은 질적인 측면에서 우리와 비교해 대체로 뒤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의학의 경우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북한은 일제의 한의학 말살정책 속에 겨우 살아남은 전래 민간요법과 동의학을 해방 직후부터 이론적으로 체계화해 실제 각종 질병의 치료에 이용해 오고 있다.

북한은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동의학을 상당 수준까지 발전시켰으며 이를 치료 및 예방사업에 널리 활용하고 있다. 북한의 이 같은 정책 및 민간요법의 육성은 현대 의료기술 수준과 신의약품 부족에 따른 의료서비스 곤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서양의 침구사제도

서양에는 고대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한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 침구술 등 동양의학의 기술과 비법이 비교적 많이 전해졌다. 특히 산업혁명 등을 거친 16세기 이후부터는 동양의 침구학이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프랑스는 침구의학이 가장 많이 수용된 나라이다. 침술 치료의 경우 프랑스 국민의 50%가 침치료를 받아본 경험을 갖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과열돼 우려가 일 정도이다.

독일도 침구술에 큰 관심을 갖는 나라 중 하나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와 달리 의사와 함께 간호사도 침시술을 할 수 있고 보험도 가능하다. 의사의 감독 아래 조산원이나 간호사가 침술을 행하는 곳도 있다. 독일 전체로 볼 때 침술을 하는 의사는 매우 적은 편이지만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큰 병원의 약 30% 정도에서 침술이 행해지고 있다.

영국도 지압, 천연약초물리치료 등과 함께 침구술에 큰 호감을 갖고 있다. 영국은 면허를 갖고 있는 의사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어 침치료 역시 의사의 책임하에만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사설기관으로 영국침협회가 설립되어 있고 침구학원도 있어 침술 보급과 연구가 점차 활발해져 가고 있다.

런던에 있는 전통침구학원 같은 곳에서는 침구의학의 기초이론부터 시작해 3년간에 걸쳐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시험을 거쳐 침사자격을 부여받고 단독으로 개업할 수도 있다.

러시아에는 동양의학이 일찍부터 유럽을 통해 전파되었다. 전파된 동양의 의료술은 각 지역과 부족들의 토속 의술로 발전됐고 현재도 민간요법으로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1951년에는 구 소련의 의사단 17명이 중국에 파견되어 6년간 연수를 받기도 했다. 특히 우주비행사들의 보건훈련 과정에도 침술이 포함되어 비행사들이 우주공간에서 생리기능을 조절하는 데 큰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제공=대한침구사협회〉


침구술의 정의와 침의 종류

‘침구술’은 침과 뜸(灸)으로 인체의 경혈(經穴)에 자극을 줘 생체기능의 변조를 바로잡고 건강증진이나 질병치료를 하는 동양의술의 하나이다. 동양의학에서 물리요법의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는 침구술에 대해 그동안 의료계는 과학적 실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황제내경’에 따르면 원래 침 종류는 참침을 비롯해 원침·시침·봉침·피침·원리침·호침·장침·대침 등 9종류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이들 중 현재 주로 쓰이고 있는 것은 호침이다. 또 피부를 압박하거나 찰과(擦過)할 목적으로 쓰는 원침이나 시침이 소아침으로 쓰이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혈에 침을 제대로 놓을 경우 통증을 거의 못 느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큰 통증을 느낀다. 또 침은 놓은 부위에 따라 족침(足鍼,) 수지침(手指鍼), 두침(頭鍼), 이침(耳鍼) 등으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전통 방식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침술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약침’(藥鍼)이다. 약물을 넣은 침으로 생김새나 치료방법이 주사와 비슷하다. 이밖에 아로마 오일을 침에 입힌 ‘향침’(香鍼)과 전류를 흘려 자극을 주는 ‘전침’(電鍼)도 있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3 “침 원리는 병의 원인을 공략하는 것”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수염 기른 원장님’의 일침철학 “한의사 의지가 침에 전달될 때 치료효과 높아져”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호일침학회 김광호 원장은 한의사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같은 모습이다. 그는 실제로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독립운동하듯 전국은 물론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이니셜을 딴 ‘KKH 취혈법’이란 독특한 침술을 개발하고 ‘동의보감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광호 원장은 그 동안은 ‘신묘한 침술을 가진 괴짜 의사’로만 여겼지만 요즘은 한국 한의학의 미래를 좌우하는 주요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동의보감에 빠져 ‘침술 세계’ 재발견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요즘 세상, 보약만 팔아도 평화롭고 따뜻하게 살 수 있는데 400여 년 전의 헌(?) 책인 동의보감을 떠받들며 침술로 대한민국 의술의 국제화를 부르짖는 이유가 뭘까. 게다가 기상이변까지 가져올 만큼 환경 변화가 극심하고 아토피를 비롯 과거엔 듣도 보도 못한 질병도 많이 나타났고 평균 신장은 물론 체형과 체질도 달라졌는데 21세기의 환경에서 과연 침술로 모든 질병의 치료가 가능할까.

“굳이 과거와 비교할 것도 없이 현재 미국, 유럽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만 비교해도 체질과 체형은 다릅니다. 하지만 제가 20여 개국 이상의 국민들을 치료해봤는데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감기약이 미국인에게는 듣고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효용이 없는 게 아닌 것처럼 근본원인을 찾아내면 치료방법도 같습니다. 과거와 환경은 다소 달라졌겠지만 인간의 감정을 좌우하는 사단칠정(四端七情)도 그대로이고, 우리 인체는 오장육부(五臟六腑)와 12경락을 바탕으로 병이 진행되기 때문에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서 아픈 쪽의 반대쪽에 침을 놓고 약을 병행하면 대부분 낫더군요. 저는 ‘일침(一鍼) 이구(二灸) 삼약(三藥)’ 즉 침술이 첫째요, 뜸술이 두 번째, 한약이 세 번째 치료법이란 뜻의 한방 성구(聖句)에 동의합니다.”

김광호 원장이 이토록 침과 동의보감을 종교처럼 숭앙하는 이유는 자신의 체험 때문이다. 경희대 한의대 예과 2학년 시절에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간경화 말기환자인 지인이 복수가 가득 차서 그를 찾아왔다. 마지막 호소를 하는 그를 위해 동의보감을 뒤지다가 책에 나와 있는 그대로 처방을 했더니 복수가 빠지는 등 증세가 눈에 띄게 호전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었지만 겉모습은 한의여도 속은 양의사인 어정쩡한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다가 본격적으로 동의보감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맹렬하게 파고들면서 침술의 세계와 효과를 재발견했다.

그는 무릎 관절이 아파 쪼그려 앉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엄지발가락 끝에 평범하게 생긴 침 한 대를 찌르는 것만으로 바로 걷거나 앉게 하는 침술을 구사하며 명의로 입소문이 났다. 화살을 쏠 때 10점짜리 과녁을 맞추듯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경혈(經穴)을 정확히 찾으면 한두 대의 침으로 통증 없이 치료효과를 순식간에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일침철학이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기감이 뛰어난 이들이 신묘한 한의사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오랜 임상경험을 갖춘 숙련의들이 더 나을까.

“기감도 중요하지만 경혈 자리를 제대로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점짜리 경혈 자리를 찾으려면 첫째는 손끝의 느낌. 흐르는 물이 고여 있는 곳, 기(氣)가 솟거나 빨아들이는 곳,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지만 실제 침을 놓으면 아프지 않은 곳을 가운데 손가락 손톱 아래 부위로 살며시 문지르며 찾아야 합니다. 침의 치료원리는 증치(症治)가 아닌 근치(根治), 즉 증상이 아닌 원인을 찾아 공략하는 것입니다. 퇴행성 관절염을 예로 들자면 퇴행성 관절질환은 뼈의 어긋남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죠. 하지만 이는 단지 증상일 뿐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뼈의 뒤틀림은 관절을 둘러싼 근육의 평형이 깨져 나타난 것이며, 근육의 불균형은 다시 오장육부 기혈(氣血)의 허실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정확한 경혈 자리를 찾아내 침을 놓으면 파킨슨씨병도 침과 약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한의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의보감을 성경 읽듯 다시 한 자 한 자 독파하기 시작한 그는 황제내경, 침구대성과 같은 한방고전을 100회 이상 완독하면서 자연스럽게 물리를 터득하게 됐다고 한다. 그후 200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8차 국제동양의학 학술대회’ 등에서 100일 간 미국 한의사 280명을 대상으로 ‘호일침’ 요법에 대해 강의를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

“당시 서양의학에 환멸을 느낀 미국인들이 대체의학에서 해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이 때문에 동양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침은 물론 뜸, 경락마사지 등에 대해 주요 매스컴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더군요. 그때 한국의 한의학도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분원 개원, 일본엔 2곳 예정

학술대회가 끝난 후 귀국한 그는 미국시장 공략을 위한 ‘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일단 2003년 대구에 처음으로 ‘호일침한의원’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에는 삼성·교대·목동, 부산에는 롯데호텔·연산동·해운대, 경상도에는 대구·포항·창원롯데·울산, 전남에는 광주·여수에 지점을 두고 있다. 200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분원을 열었다. 2007년 봄에는 일본 오사카와 히로시마에 동시에 두 개의 분원이 개원한다.

한의학의 메카로 알려진 중국에서도 그는 제 실력을 발휘했다. 지난 10월 ‘텐진 국제중의학 학술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을 때 세계 42개국에서 온 의학자 200여 명이 갈채를 보냈고 텐진중의대 총장의 요청으로 중의사, 교수, 대학원생 등 50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환자에게 침술 시연도 하면서 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그의 침을 맞은 고관이 효과를 보자 이스베스차지 등 유력지에 소개되었고 발레단 단원들이 그에게 침을 맞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 유방암 증세가 있는 여자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 한 번 시술로 차도를 보이자 “완치될 때까지 러시아에 머물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환자가 하필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아내여서 거절하는 데도 몹시 힘들었단다. 중의사들조차 인정해주고 전 세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침술이 정작 한국에서는 여전히 푸대접을 받고 있어서 김광호 원장은 속이 상한다고 했다.

“아직도 침을 맞거나 한약을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한의학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은 뜸은 보하고 침은 사한다는 식의 어쭙잖은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양의 4명 중 1명이 침을 놓고 미국 군의관 진급심사시에는 침을 놓을 줄 알면 가산점을 줄 만큼 세계적으로 침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바로 잡아지겠지만 우리 한의사들부터 침은 물론 한의학을 제대로 공부해야 합니다.”

김광호 원장은 침만 공부해서는 좋은 한의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한의학, 사상, 그리고 인생의 공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환자를 확실히 치료하겠다는 마음이 침에 전달될 때 치료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과거엔 침 놓는 법 등 기술 위주의 침을 지도했지만 이젠 마음의 폭을 넓히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김 원장에게 침은 학문이며 인생이고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이면서 동시에 신앙이기도 하다.

“신앙인들이 불교과 기독교 교리를 확신을 갖고 무조건 믿으면 신앙심도 커지고 기도의 힘도 느끼지요. 하지만 ‘예수가 진짜 있었는지 증거를 내놔라’ 하는 것처럼 침도 즉각적 효과를 과학적 데이터로 내놔라 등의 요구만 하면 침을 놓는 실력은 물론 치료효과도 적습니다. 동의보감에 기초한 호일침 요법으로 너무 많은 환자들이 낫는 것을 보았기에 저는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어요.”

몇 년마다 산속으로 들어가 공부

침으로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다. 김 원장과 호일침학회의 실력이 소문나면서 그만큼 중병을 앓는 환자가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한의원 문을 닫고 6개월 가량 산 속에서 책을 보기도 했다. 특히 동의보감을 주로 분석한다. 우리 한의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철저히 우리 것을 분석해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긴 수염도 4년 전 대구 서당에서 공부에 몰두하다 면도할 시간이 없어 기르게 된 것. 마침 그 무렵에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걸 본 시청자들이 ‘수염 기른 원장님’을 찾아서 할 수 없이 기르게 되었단다. 김 원장의 수염 기른 모습이 멋있어 보였는지 호일침학회 사무총장은 물론 일분 침구사회 회장과 수석간부 역시 수염을 길러 ‘호일침학회에서 성공하려면 수염을 길러야 한다’는 새로운 징크스를 만들어냈다.

그 근사한 모습으로 품위 있게(?) 보약만 팔아도 편히 살 텐데 왜 회원들과 밤잠도 안 자고 공부를 하며 마치 개척이나 하듯 외국에 가서 한방병원을 열려고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사람은 부나 명예만이 아니라 ‘꿈’이 있어야 합니다. 수백 억 재산을 갖고 병원 특실에서 돈을 펑펑 쓰며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죠. 어떤 부자 중병환자의 경우 가족들이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치료를 굳이 하기 싫다’며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도 봤습니다. 제가 한 달에 1억을 번다면 처음 몇 달은 행복할지 몰라도 다시 1억5000만 원을 벌어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꿈을 갖고 실현해가는 과정이지요. 저는 우리 침술과 한의학이 태권도처럼 전 세계에 퍼져 나가고 종주국이 되어서 성지순례하듯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오게 하는 것이 꿈입니다. 장충체육관이나 잠실운동장에 각 나라에서 참가한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 국기나 깃발을 들고 ‘호일침학회 세계학술대회’에 참가해 한국 한의학과 침술에 존경심을 표현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지난해 일본에 의료봉사활동을 갔을 때 통역을 맡았던 재일교포가 ‘일본인이 한국 사람에 대해 정말 마음깊이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면서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눈물을 글썽일 때 김광호 원장은 그의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았단다. 꿈이 있어서, 그 꿈을 자신과 동료들의 손으로 이뤄낼 날이 가까워서 김광호 원장은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마냥 행복하단다.

<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4 침술 요법으로 건강 되찾은 임상사례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침을 만나 몸이 편안해졌어요”

요통 박성범군


치료 후 아버지와 함께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박성범군(오른쪽).
흔히 한의사가 놓는 침은 근육이 뭉쳤거나 발목이 삐끗했을 때만 효과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침의 위력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제 임상에서 침은 요통, 고관절통, 슬통(무릎통증)은 물론 오장육부의 문제, 분노나 슬픔 등 감정적 문제도 치료한다. 심지어 암환자도 침의 도움을 받는다. 침을 통해 건강과 웃음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엉덩이 통증 줄어 일상생활 가능박성범군(18)은 지난 2005년 갑자기 허리 아래 엉덩이 부위에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어도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6년 12월 다시 통증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재발했다.

앉아 있는 시간이 10분 정도 지나면 통증이 극심해져 더 이상 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고 무거운 느낌도 들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 통증이 가장 심했다.

엉덩관절이라고도 하는 고관절까지 연결된 엉덩이 통증은 올 1월에는 무릎 아래쪽으로도 진행됐다. 다리를 조금 올리는 동작만으로도 통증이 느껴졌다. 박군은 “병이 점점 진행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 1월 척추전문병원에서 디스크 진단을 받고 수술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박군의 부모는 박군이 아직 어린 나이라 가능하면 수술만큼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한의원을 찾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예진할 때 박군은 “평소 갈증이 심해서 물 마실 때 두 컵 정도를 한꺼번에 차가운 상태로 마시고 겨울이면 입이 잘 건조해진다”고 말했다. 또 “평소 화나 짜증을 잘 내고 한숨을 잘 쉬며, 잘 놀래는 편이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박군은 “오른쪽 귀에서 ‘쿵’하는 이명이 일정하게 나는 편이고 평소에 등 쪽에서 땀이 잘 나며 최근에는 하체 쪽에서도 땀이 난다”고 말했다. 오전에도 피곤함을 느끼며 배가 더부룩하고 식후에 트림을 자주 하며 속이 쓰린 증상도 있었다. 감기에 걸리면 항상 열이 난다고 했다.

올 1월 박군에 대한 첫 진료를 할 때 누운 자세에서 허리를 들어보라고 하니 통증 때문에 허리를 들고 유지하지를 못했다. 다리들기(SLR 테스트)를 해보니 침대에서 30cm만 들어도 엉덩이 부위에 통증이 생겼다.

한의사가 오른쪽 팔과 다리에 침을 놓자 다리들기 테스트에서는 거의 불편을 모를 정도로 많이 호전됐다. 그러나 사흘 후 통증이 다시 재발했다. 재차 오른쪽 팔과 다리에 침을 놓는 처치를 하자 엉덩이 부위 통증이 세 번째 진료일까지 40% 가까이 감소되었고 아픈 정도도 더 이상 심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치료 전에는 10분만 앉아 있어도 통증이 심해지던 것이 네 번 정도 치료를 받은 뒤부터는 2시간 정도 않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6회의 침치료를 진행했고 한약을 처방했다.

디스크로 인해 무릎 아래로 바깥쪽이 아픈 느낌도 엉덩이 통증과 같이 호전되기 시작해 현재는 통증이 20%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많이 좋아졌다. 박군은 “누워 있다 일어날 때 한 번만 통증이 있고 평상시의 활동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아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박군은 다른 일반적인 디스크환자와는 달리 허리에 외부적인 손상이나 무리한 운동이나 퇴행으로 인한 관절염 없이 디스크가 발생한 경우이다. 순전히 내부 오장의 질병으로 인해서 요통이 발생한 것이다. 그 요통이 양방적인 진단에서 디스크로 판별될 정도의 질환이 된 것이다.

요통은 신장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신장병은 동의보감에서 기어동(起於冬)이라고 하여 겨울에 생기는 병이다. 2006년 12월 특별한 이유 없이 박군에게 통증이 발생한 것은 2005년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방적으로 장부가 계절상의 성쇠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암 크기와 수치 많이 줄어

췌장암 말기 환자 백종현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의원을 찾았다가 병세가 호전된 백종현씨.
췌장암 말기 환자 백종현씨는 한의원을 매일 간다. 처음 한의원을 찾아갔을 때의 백씨는 병색이 완연했다. 가족의 요청으로 백씨는 췌장암 말기가 아닌 초기로 알고 있긴 했지만 이미 정상 체중에서 10㎏ 넘게 빠지고, 소화를 시키지 못해 유동식으로만 식사를 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첫날 침을 맞고난 백씨는 평소 절반도 못 먹던 홍삼엑기스 한 포를 거뜬히 먹을 수 있었다.

진료 7개월째인 요즘 백씨는 체중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으며 원래 식사량의 80~90%정도를 먹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백씨는 한의원을 방문하기 전 양방에서 항암치료(약물)를 계속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고통이나 불편함이 컸다. 반면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은 양방의 항암치료를 받을 때에 비해 고통이나 불편함이 20~30%로 줄어 약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정도로만 느끼는 상태이다. 지금은 항암치료를 중단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또 얼마 전 검사에서는 암 크기와 수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백씨의 며느리는 “처음에는 병원에서 한 달밖에 못 사실 거라는 얘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었다”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암의 정복은 양방이건 한방이건 불문하고 현대 의사들이 공히 느끼는 화두다. 양방에서는 주로 외과적 수술 방법과 암을 축소시키는 항암제를 사용하여 치료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과정중에 암 환자의 생활의 질이 크게 나빠지기도 한다.

동의보감에 ‘양정적자제(養正積自除: 인체의 정기를 기르면 적취, 즉 한방에서 보는 암이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 라는 문구가 있다.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방법이 아니라 인체의 정기를 길러서 암을 치료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서양의학의 항암치료 중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인체의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암세포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건강한 세포들까지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적취(積聚: 한방에서 형태를 이루는 덩어리를 일컫는 말) 덩어리인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정기를 길러주기 때문에 인체의 기능이 나아지면서 컨디션도 덩달아 좋아지게 된다.

참기 힘든 극심한 동통이나 불편했던 증상들이 없어지면서 일상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암 환자 중에는 항암치료와 같이 한방치료를 받으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 한의원을 방문하기도 한다.

중국 천진중의약대학의 부속병원에 따르면 암 환자나 신부전 환자들의 경우도 한약을 같이 병행해 치료하는 것이 월등히 효과가 좋다고 한다. 이들은 수술 전이나 후에 환자의 정기를 보(補)해주기 위해 한약을 복약하는 치료를 하고 있으며 지금도 임상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원인 치료로 전체적 몸상태 향상

무릎통증 설점이씨


이제는 절뚝거리지 않고 걷게 됐다는 설점이씨가 침을 맞고 있다.
올해 61세인 설점이씨는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한의원을 찾았다. 지난 10여 년 간 10월만 되면 무릎 통증이 심해지고 봄이 되면 다시 괜찮아지기를 반복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나아지겠거니 생각하며 별 다른 치료를 받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2006년 10월께부터는 지금까지 통증이 지속적으로 계속됐다. 가만히 있어도 무릎이 따끔거리고 쑤시며, 붇고 열이 나기도 했으며,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도 통증이 있었다. 때론 통증이 심해 절뚝거릴 정도였다. 아프긴 했지만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얼마 전 길에서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의사는 X-ray 결과로 보아 관절이 다른 사람에 비해 원래 약하므로 계단을 조심해야 하고 운동이나 등산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또 치료를 계속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정씨는 약을 챙겨 먹거나, 뼈주사를 맞거나 하는 게 싫어 두 번 다시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씨의 둘째 딸이 한의원에서 침으로 치료하면 어떻겠냐고 해 딸과 함께 한의원을 방문하게 됐다.
처음 한의원을 방문하던 날 한의사는 몸 상태에 대해 1시간 가량 상담을 한 후 침을 맞자고 했다. 통증이 오는 무릎을 체크해 보는 것은 물론 배를 비롯해 여기저기 눌러보며 통증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질문 뒤엔 침을 놓았고 그러고 나서는 신기할 정도로 무릎과 배가 편해진 느낌이었다. 정씨는 ‘이렇게 하면 금새 낫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한의사는 “병세가 세다면 침 맞은 뒤 편한 상태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병세가 약하다면 좋은 느낌이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전자였다. 침을 맞고 좋은 상태가 하루밖에 유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치료를 시작한 10일 정도는 무릎이 더 많이 붓고, 통증도 심해졌다. 처음에 아픈 정도를 10으로 치면 15 정도로 통증이 왔다. 담당 한의사는 치료과정이라며 정씨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열흘이 지난 뒤부터는 무릎이 편해지는 시간이 늘어났고, 붓는 정도나 통증의 세기도 훨씬 줄어들었다.

정씨는 “한의원에서 치료를 3개월 간 받으면서 가장 기뻤던 일은 몸의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라고 말했다. 담당 한의사는 “무릎이 아픈 원인은 신장기능이 좋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장치료를 받으니 무릎이 좋아지면서 소변을 못 참는 증상도 좋아지고 소화도 잘되어 속이 편해졌다. 바지를 입으면 갑갑하던 느낌도 사라졌다. 또 두통이 올 때마다 뇌선이라는 약을 자주 복용하곤 했는데 두통이 줄어들어 그 약을 먹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얼굴로 열이 올라오며 땀이 나는 것도 없어졌고 피로감도 확실히 줄었다.

정씨는 “이렇게 몸 상태가 좋아지니 내 기분도 좋지만, 우리 딸들도 엄마가 아프단 소리를 안 한다며 더 좋아한다”며 “남은 기간 열심히 치료를 받고 앞으로 관리도 잘해서 재발이 안 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릎·다리 통증 50% 이상 호전

고관절 통증 정운진씨


수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침으로 효과를 본 정운진씨.
정운진씨(69)는 스무 살에 결혼해 첫 아이를 출산한 후부터 골반과 허벅지 사이 부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고관절통’을 앓은 것이다. 그런데 한의원을 찾기 전까지 49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통증을 견디며 지냈다.

농삿일 할 때는 통증으로 고통을 참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또 허리 척추뼈에 해당하는 곳에 요통이 동반돼 담경락에 해당하는 엉덩이 부위와 무릎 아래 쪽 통증과 더불어 무릎통증도 심각한 상태였다. 급기야 무릎을 굽혀 완전히 앉기가 불가능했으며 걸을 때도 무릎통증으로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서 걸어야 했다.

검사 결과 고관절통은 물론이고 무릎의 퇴행성관절염과 허리디크스, 그리고 골다공증도 있었다. 하지만 몸이 쇠약한 상태라 수술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때문에 정씨는 진통 소염제 계통의 약물치료로만 통증을 약화시키며 근근이 몸을 지탱해 왔다.

한방치료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아시혈(아픈 혈자리에 침을 놓은 것) 위주의 대증요법과 진통 치료에만 그쳤다. 정씨는 그렇게 그때그때 심한 통증만 완화시키며 병을 호전시킬 기대는 갖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고관절통, 슬통(무릎통증), 요통(허리통증)으로 침대에 오르고 내릴 때도 동작을 천천히 해야 할 정도로 거동이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걸음도 빨리 걸을 수 없었으며 일어설 때도 손을 짚어야 할 정도로 불편해졌다.

다리들기(SLR 테스트)를 해본 결과, 정씨의 다리는 고작 38cm 정도 올라가는 상태였다. 다리 각도가 약 30도 정도 되었을 때 고관절과 무릎에 통증을 심하게 느꼈다. 무릎을 굽히고 펴는 동작에서도 굽힐 때 통증이 심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굽혀야 했으며 무릎을 펴는 동작 뿐만 아니라 무릎을 약간만 비트는 움직임에도 많이 불편해했다.

치료를 시작하며 간과 관련한 침을 놓자 정씨는 “무릎을 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침치료가 끝난 후에는 다리를 74cm까지 들어올리며 80도 가까이 고관절의 가동이 편해지는 것이 확인됐다. 이후 간침을 4회 정도 시행하면서 고관절의 통증이 10% 정도 줄어들었으며 SLR 테스트에서도 거의 정상적으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회 치료 이후 SLR 테스트에서는 80cm 이상을 움직일 수 있었으며 거동할 때에도 고관절의 통증이 크게 줄어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담침으로 바꾸어 치료를 계속했다. 2회 치료한 후 증상의 호전도를 체크해 보니 고관절 통증과 무릎바깥 쪽 통증이 50%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7회 정도 계속 치료한 결과 고관절 통증은 상당히 소실되어 SLR 테스트에서 고관절 통증을 더 이상 호소하지 않게 되었다. 무릎바깥 쪽 통증뿐만 아니라 엉덩이에서 다리 쪽으로 이어지던 통증도 50% 이상 호전되었다.

치료를 지속하면서 간 기능을 도와주는 한약을 같이 복용했다. 혈맥의 순환 기능이 좋아지면서 가만히 있어도 아프던 증상과 밤에 다리 통증이 심해지던 증상이 거의 없어졌다. 걸어 다닐 때와 앉고 설 때처럼 움직임이 많을 때만 통증이 일어나는 수준이 됐다. 이제 남은 치료는 무릎통증과 허리통증을 없애는 것이다. 담침으로 관절통증이 호전을 보이면서 무릎의 굽히고 펴는 게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지만 앉기 동작을 시켜보면 엉덩이를 치켜든 자세로 더 이상 앉지 못했으며 일어설 때도 양 무릎에 손을 짚고 일어서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릎관절의 완치를 위해서는 집중적으로 치료를 많이 해야 될 것이다.

 

5 ‘한국의 의술, 한의학’을 찾는 사람들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의기투합 한의사들 학회 설립, ‘침이 으뜸’이라는 동의보감 정신에 충실
서울 서초동 호일침한의원에 모인 호일침학회 회원들.

의료시장 개방이 턱밑에 다가왔지만 한의학은 아직까지 다른 나라에 그 이름조차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한의사라는 영어 명칭조차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OMD(Oriental Madicine Dactor) 혹은 KMD(Korea Madicine Doctor)로 혼용되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압도적인 시술 실력으로 독점적 브랜드를 지향하며 세계화에 대비하는 호일침학회가 있다.

호일침학회는 동의보감을 근거로 한 원인치료에 매료된 한의사 4명이 2003년 4월 모여 ‘한국의 의술, 한의학’의 뿌리를 찾자고 의기투합한 데서 시작됐다. 지금은 회원이 모두 190명이며 이들은 오늘도 임상결과를 놓고 분석하고 있다. 호일침학회 회장인 백승일 박사가 호일침학회의 발전상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다즉사침 일침위솔(多則四鍼 一鍼爲率·침을 많이 놓으면 4개이고 한 개의 침이 가장 우수하다). 일침이구삼약(一鍼 二灸 三藥·첫번째는 침이요, 두번째는 뜸이고 세번째가 약이다).

한방치료의 효능을 일갈한 동의보감의 경구다. 원인을 찾아 침을 놓으면 치료효과가 신속히 나타나며 굳이 침의 개수를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경구를 성경구절처럼 믿은 사람이 있다. 김광호 호일침한의원 대표원장이 그다. 그는 수많은 임상 치료를 통해 이 글귀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스스로 이를 ‘일침요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름만 붙였을 뿐이지 새로운 침술은 아니다. 굳이 원리를 따진다면 동의보감의 기록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김광호 원장은 2001년 10월 ‘일침요법’에 대한 최초의 공개 강의을 열었다. 단순한 침법이나 침술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동의보감 원전과 정통한의학 이론을 바탕으로 철저한 임상적 검증 끝에 마련된 학술 세미나였다. 김광호 원장의 메시지는 “한의학을 믿고 동의보감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는 한의사와 한의학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옅어지고 양진한치(洋診韓治·양의학으로 진단하고 한의학으로 치료한다)의 매너리즘에 매몰되어 가는 풍조에 대한 하나의 경종이었다. 나에겐 한의학의 원전에 근거해서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뛰어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한의사로서 ‘치료’가 아닌 ‘보약장수’로 전락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자괴감에서 탈출할 수 있는 청량제였다. “내가 찾던 게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동료들이 있었다. 장성봉·권오성 한의사가 그들이다. 강의에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임상실습을 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구현됐다. 임상실습과 치료 그리고 눈을 의심하게 하는 임상효과, 그것은 한의사로서 새로운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일이었다.

천진중의대, 한·중 일침연구소 제안

김광일 원장이 2005년 중국 광도를 방문. ‘일침요법’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듬해 5월 어느 날 김광호 원장은 홀연히 ‘공부를 더 하겠다’며 한의원 문을 닫았다. 새로운 눈을 뜬 한의사들은 러시아로 의료봉사를 떠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의원 폐업을 한 상태인 김광호 원장도 흔쾌히 동행해줬다. 2002년 7월 19일부터 8월 2일까지 보름간 러시아 의료봉사의 길에 올랐다. 떠나는 첫날 중간 기착지인 타시켄트 공항에서 약 5시간 정도 머물게 됐다. 참석자들은 ‘일침요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조직을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모스크바 국립1병원 등에서 4박5일간의 의료봉사를 진행하였다. 첫날 약 2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난 후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한국에도 침이 있느냐. 중국침술을 배웠냐”고 묻던 사람들의 반응은 곧 “한국침 최고”로 바뀌었다. 결핵을 앓고 있던 ○○병원 부병원장의 부인, 7년 동안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아온 40대 남성 허리디스크 환자, 스키를 타다 타박상을 입은 병원 원장(재활의학과), 걷는 것조차 불편했던 한 러시아 여자 의사 등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치료 과정을 보여줬다. 그러자 이 병원에선 아예 일반 환자 예약을 받지 않고 병원 의사와 관계자들이 치료를 받겠다고 나섰다. 한의학이 ‘기적을 상식처럼’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러시아에서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2004년 8월엔 일본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원폭피해자인 한 여성 환자는 목 근육을 전혀 쓰지 못했다. 치료를 받고 돌아나가는 그는 “고맙스므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호일침학회는 지난해 텐진중의대에서 열린 세계침구학대회에 참가했다. 호일침학회가 이 대회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었다. 김광호 원장이 임상치료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함께 2시간의 특강이 진행됐다. 김광호 원장은 강연 말미에 “정통적인 중의의 달인이 되라”고 일갈했다. 중의학이 ‘군진의학(軍陣醫學:유물론적 사관에 기초한 중의가 외과위주의 양의학과 결합한 형태의 의학)’에 치중하면서 전통의 중의가 사라지고 있는 데 대한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환자치료를 위한 시연도 했다. 한의와 중의는 원리에서 전혀 다르다. 한의는 좌통우치 우통좌치(통증부위 반대편에 침을 놓는 것)이며 많아야 4개에서 6개의 침을 놓는다. 반면 중국의 침은 환자를 고슴도치를 만들 정도로 많은 침을 놓는다. 그것도 환부 위주로 놓는다. 전혀 다른 침술을 본 천진중의대는 호일침학회에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 결실이 한·중일침연구소 창립을 위한 MOU 체결이었다. 텐진중의대는 중의학의 메카다. 이 대학이 국가 혹은 국가기관 이외에 공동연구소를 개설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장성봉·권오성 한의사와 나는 아예 ‘가출’을 했다. 나는 당시 꽤 잘되던 부산 한의원의 문을 닫았다. 당시에 아들이 둘 있었다. 출·퇴근도 없이 공동숙소에서, 많이 자면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공부에 매달렸다. 한의사도 과로 앞에선 장사가 아니었다. 응급실에 세 번이나 실려갔다. 의술의 본질은 치료이고 완벽한 치료를 위해서 철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호일침학회는 2005년 한의학 임상치료의 발전을 위해 킴스일침장학회를 발족시켰다.

2003년 4월 3일 대구 범어동에 ‘호일침한의원’을 김광호 원장과 함께 4명이 공동개업했다. 김광호 원장은 일주일에 4일 진료를 했다. 한의원 운영매뉴얼을 만들었다. 의료진료카드의 ‘규격화’도 추진했다. 그게 바로 ‘일침차트’다. 미국 호일침한의원 LA본점을 비롯, 현재 운영 중인 12개 호일침한의원에서는 똑같은 ‘일침카드’를 쓰고 있다. 호일침한의원은 다른 한의원에 비해 의료수가가 3배에서 6배나 비싸다. 명품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때문만은 아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구에 있을 당시 한 스님이 진료를 받았다. 진료비가 83만원이 나왔다. 스님이 “너무 비싼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성철 스님에게 법문 한 마디를 들으려면 얼마를 드리십니까”라고 대꾸하자 아무 말이 없었다. 성철 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서는 3000배를 해야 한다는 얘기에 빗대서 최고 진료를 하고 있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치료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의사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객에 대한 의사의 최대 서비스는 치료다. 이런 자신감 역시 끝없는 탐구와 임상치료에서 나온 것이다.

‘새로운 의학’으로 세계진출 꿈

이런 토대에서 지난해부터 한·양의 협진도 주도하고 있다. 부산 호일침한의원 본점에서 성형외과와 함께 협진을 하고 있다. 한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원에게 “우리와 협진을 하면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자 그는 전혀 믿는 기색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쌍꺼풀 수술을 한 환자에게 침을 놓고 부은 눈이 곧 가라앉는 것을 목격시켜 주었다. 또 지방흡입술을 받은 환자(지방흡입술을 받으면 상체 거의 전부가 멍이 들고 만질수도 없는 통증을 느낌)에게 시술하여, 치료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즉시 협진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부산은 특히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원하는 일본인들이 많은 곳이다.

러시아 의료봉사를 갔을때 모스크바1병원 관계자들과 의견교환을 하고 있는 호일침학회 회원들.
2002년 11월 학회가 공식 출범할 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500만 원의 입회비와 연간 100만 원의 연회비를 걸고 회원을 모집했다. 고액의 입회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호응을 받았다. 총 58명의 1기 회원으로 학회가 구성됐다. 학회 설립 초기인 1기 회원들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동의보감의 의술을 익혀갔다.

1기생들이 수료하는 자리에서 2기생의 입회비를 결정했다. 입회비 1000만 원에 연회비를 200만 원, 각각 처음보다 100% 인상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는 동의보감을 통해 정통 한의학을 공부하고, ‘일침요법’을 통해 새롭게 한의학에 눈을 뜨게 된 회원들의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또 소중한 것을 함부로 내어 놓지 않고 가치를 인정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만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호일침학회는 단순히 강좌를 개설하거나 수강료를 받고 강의를 해주는 곳이 아니라 정말 뜻을 갖고 진지하게 학문할 사람을 필요로 했다. 이렇게 해야만 함께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학문의 전달자 역할만으로는 ‘일침요법’이 바로 설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2001년 11월 ‘민족의학신문사’가 주최한 김광호 원장의 ‘일침요법’ 강의는 단연 화제가 됐다. 수강생 규모(한의사 220명)와 반응, 강의료 등등…. 당시 약 2억4000여만 원의 강의료 수입이 발생했다. 김광호 원장은 강의료 수입 중 3000만 원을 세 분의 한의대 교수님께 연구비로 쾌척했다. 또 강의비용(장소 및 시설 대여)을 제외한 전액을 민족의학신문사에 기부했다.

이것이 출발이 되어 2002년 2회째부터는 학회 재정에서 자금을 마련해 기부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2006년까지 매년 3000만원씩을 교수 연구비로 수여하여 왔다. 한편 2004년에는 ‘동의보감 경시대회’를 개최하여 전국한의과대학학생 약 150명이 응시하였고 이중 8명에게 1500만원의 장학금(상금)을 지급하였다.

호일침학회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회원들과 함께 외부 강의도 하고 여러 수익사업도 하여 기금을 조성한 다음, 우리나라 의학 전반을 이끌어갈 인재를 찾고 지원하는 비영리장학재단의 설립을 염두에 두고 있다. 태권도가 세계로 뻗어나가듯, 한의학이 양의학의 대체의학이 아니라 새로운 의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승일 호일침학회 회장 dydbaek@hanmail.net>

 

 

6 한의학=침술’ 자연요법으로 각광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동양적 ‘기’ 개념 확산으로 관심 높아… 중의학 판치고 한국침술 설자리 잃어
미국 LA에 있는 동국로얄 한의대에서 이혜원 교수가 학생들에게 혈자리를 교육시키고 있다.

미국에서의 한의학을 얘기하자면 우선 개념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한약과 침술을 합쳐 ‘한의학’이라고 불러도 혼선이 없겠지만 미국에서의 한의학 또는 침술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이것들 외에 몇 가지 개념 설정이 필요하다.

우선 ‘한의학’ 또는 ‘한방’은 미국의 한국 동포들에게 두루 쓰이는 말로써 한국의 한의원에서 치료하는 내용을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미국 현지의 한의대에서 공부를 하고 면허를 취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의학’을 배운 것이 아니라 거의 ‘중의학’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각급 한의과 대학에서 쓰이는 교재들은 대부분이 중의학을 다룬 것이거나 중의학을 기초로 한 영문 교재들이다. 물론 면허 시험도 중의학을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의 한의학 교재는 미국에서 학교 교재로는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물론 중의학과 한의학의 기본 원리나 다루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미국에선 ‘한의학’이라고 부를 만한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다만 한국 동포들만이 광범위한 한방 치료를 포괄적으로 ‘한의학’으로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전역에 한의사 3만여 명

미국인들은 주로 동양의학(Oriental Medicine) 또는 중의학(Chinese Medicine)으로 부르고 있으며 한의사는 ‘침구사(Acupuncturist)’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침과 한약을 다루는 면허를 각기 따로 부여하기 때문에 한약사(Herbalist)만으로 활동하는 의료인도 있다. 서술상의 편리를 위해 침은 ‘침술’, 침과 한약을 합친 치료 개념을 ‘한방’으로 표현하기로 하자.
LA에 있는 사우스베일로 한의과 대학 병원에서 수퍼바이저로부터 인턴 실습을 받고 있는 인턴들.

한의원 가는 이유는 침 맞기 위해

미국인들이 한방치료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여러 자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의대로 등록돼 있는 학교만 해도 미 전역에 50여 곳에 달하고 있으며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에는 13개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한의사만 해도 미 전역에 약 3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에만 6~7천명이 개업하고 있다. 이렇듯 한방 치료가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곳은 캘리포니아이다. 소수계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한방을 포함한 대체의학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이들의 영향을 받은 젊은 전문직종 미국인들이 한방치료에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LA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산타모니카가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거주 지역이다. 이 지역에 산타모니카 블러바드를 따라 100여 개가 넘는 한의원이 들어서 있다. 거의 한 블록마다 하나씩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상가 렌트비도 매우 비싼 이 지역에 늘어선 한의원들을 보면 과연 수지를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지역 한의원들은 소위 ‘잘나가는 한의원’에 속한다.

비벌리힐스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은정 한의사가 비만환자에게 이침요법을 하고 있다.
환자의 거의 대부분이 백인들이고 이들은 주로 보장성이 매우 좋은 보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곳 한의원들의 수입은 꽤 괜찮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들은 주로 침을 맞기 위해서 온다. 미국인들에게는 이미 ‘아큐펑쳐(Acupuncture: 침구)’가 신비로운 치료술을 보여주는 대체의학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한국인들처럼 보약을 먹기 위해, 또는 치료약으로 한약을 짓기 위해 한의원을 찾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다.

주로 관절이나 어깨 통증, 두통, 허리 통증 등을 치료하기 위해 찾는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부 한방 매니아들은 그저 침을 맞으면 기(생체 에너지)조절이 되기 때문에 편안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이유로 찾기도 한다.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한의원들의 대부분은 중국계 이민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인들의 미국 이민 역사가 오래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중의학을 국제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실이기도 하다. 산타모니카 지역 한의원을 즐겨 찾는 미국인 로버트 밥우드(44.영화촬영기사)는 “침을 맞고 약 30분 정도 누워 있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스트레스가 조절되는 것 같아서 습관처럼 찾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들에게 침술이 통하게 된 데는 각종 기수련, 요가 등의 보급으로 ‘기’에 대한 개념이 널리 퍼진 것과도 무관치 않다. 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어김없이 요가 클래스가 있고, 한국의 단월드가 보급한 ‘단요가 센터’도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백인들에게 동양적인 심신 수련법이 널리 보급되면서 ‘기’ ‘인체 에너지’에 대한 개념이 확산됐으며, 이는 곧 침술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침술과 한약이 대표적인 ‘자연요법’으로 인식되면서 몸에 부작용이 없고 자연치료를 지향하는 한방진료가 미국인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의원을 찾는 미국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요가나 선(Zen) 명상 등을 하고 있거나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며, 대증요법의 서양의학보다 원인치료에 주목하는 대체의학을 신봉하고 있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침술만 좋아하고 한약은 무조건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먼저 ‘한약’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지 침술로 효과를 본 환자들은 대개 한약 복용에 대해서도 수긍하고 이를 복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침을 통해 동양의학의 효능을 경험한 환자들은 한약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비벌리힐스(Beverly Hills)에서 주로 부유층 백인들을 상대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은정씨(38)는 클리닉에 많은 종류의 한약재를 비치하고 있다. “백인들이 잘 찾느냐”는 말에 “침을 맞은 사람에게 설명하면 잘 먹는 편”이라고 했다. 이런 백인들의 심리를 활용해 침술과 한약을 병행하면서 수완 좋게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도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국인들처럼 보약이나 탕약보다는 정제로 만든 한방 알약을 많이 찾고 있다.

양의들도 침술 배워 치료에 활용

침술을 포함한 한방치료가 미국인들에게 점점 인기를 얻어가면서 학계에서도 이와 관련한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하버드 대학에는 양-한방 협진 연구센터가 가동중에 있으며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도 침술의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물로 이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뉴스위크’를 포함한 주요 언론에서도 침술의 효능을 집중적으로 다룬 기사가 커버스토리로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수 양의사들은 침술을 별도로 배워 치료에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침술이 미국인들의 저변을 확대하면서 한의대를 노크하는 미국인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주를 제외하고는 전국한방면허위원회(NCCAOM: National Certification Commission For Acupuncture and Oriental Medicine)가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한 뒤 일부 주정부에서 요구하는 추가 조건만 갖추면 면허를 받을 수 있다. 즉 캘리포니아주만 자체 시험을 치러 면허를 발급하고 있고 그밖에는 NCCAOM의 면허 시험만으로 클리닉을 오픈할 수 있다.

NCCAOM의 시험을 거쳐 한 해 배출되는 한의사만 해도 2~3천 명에 달할 정도이며 현재 미국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중 80% 이상이 미국인으로 추정될 정도로 미국인들의 한의사 진출 속도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50여 곳에 달하는 미국의 한의대에서 채택하고 있는 교재는 거의 ‘중의학’ 교재들이다. 면허 시험이 중의학을 기초로 출제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찌감치 중국계 학자 또는 중의학을 배운 외국 학자들이 영문 서적들을 대거 출간했기 때문에 영어 교재는 거의 ‘중의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미국에서 영어로 중의학을 공부한 미국인들은 임상 결과 등을 매우 과학적인 방법으로 학회지 등을 통해 발표하고 있는데 이러한 연구 흐름 속에 한인 한의사들은 중국계 한의사들에 거의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다. 이곳 현지에서 중의학을 공부한 한인들은 “미국의 중의학이 거꾸로 한국으로 역수입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대한 국제화 흐름을 타고 있는 표준 한방으로서의 중의학 위상에 한의학이 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비관적인 예상 때문이다.

“미국 중의학이 곧 한국으로 역수입”

침을 통해 동양의학의 효능을 본 미국인들이 탕약 등에도 관심을 갖고있다.
한의대에서 중의학 교재와 한의학 교재에 따라 한약재 성능이나 침자리(혈) 등이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럴 경우 중의학 교재의 내용을 우선적으로 채택하는 것은 물론이다. LA한인타운에 자리하고 있는 동국로얄 한의과 대학의 임상 교수이자 침구학 교수인 이혜원 교수는 “미국에서 한의학 이론은 모두 중의학으로 보면 된다. 한의학을 바탕으로 한 교재는 파고들 틈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에선 ‘한의학’은 없고 ‘중의학’이 판을 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이처럼 미국 한의대에서 가르치는 중의학을 공부한 한의사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이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 침술’의 영역은 좁을 수밖에 없다. 한국어 강의가 개설되어 있는 LA의 5~6개 한의대에서는 사상침법·일침요법 등 한국식 침법을 한 학기 정도 강의하고 있지만 정규 커리큘럼의 보조적인 의미밖에는 안 되는 실정이다. 이 같은 한국식 침법을 내세우며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오직 LA, 뉴욕 등의 한인사회에만 있을 뿐, 미국인들에게는 아직 개념조차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LA에서는 전통침법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하는 침술가들이 고액의 과외비를 받고 한인 한의사들에게 이를 ‘비법’으로 가르쳐 주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한의대에서는 면허시험을 보기 위해 일정 기간 레지던트 기간을 거치며 환자를 치료하도록 하고 있는데, 모든 침술은 중의학 교과서에 의거한 ‘표준’ 침법을 위주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LA권 한의대에서 한국인 교수가 수퍼바이저로 재직하고 있을 경우 한국 침법이 구사되기도 하지만 보조적인 침법의 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인사회를 주 고객층으로 하는 한의사들은 저마다 ‘신비의 침법’을 내세우며 과장 광고를 일삼고 한인들은 ‘믿을 만한 한의사를 구할 수가 없다’며 서로 불신하는 모습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이에 비해 미국인들을 상대로 진료를 하고 있는 한의사들은 교과서 수준의 정통 침법만으로도 ‘명의’ 소리를 들으며 미국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어 대조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의 한의학은 침술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약은 침술의 보조적인 위치일 뿐이다. 한인타운에선 한국식으로 보약이나 치료약을 위주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인 한의사들이 많지만 한인타운을 벗어나면 거의가 침술로 승부를 하고 있다.

한방·양방 관련법안 힘겨루기

한방치료가 미국인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어가면서 미국 양의사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한의사 관련 각종 법안들의 처리가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해말에는 침술 치료 관련한 AB2152 법안이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기각되었는데 이 법안은 한의사 면허 없는 양의사들이 침술 치료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한방업계의 기대를 모아 왔었다.

지난 97년 통과된 AB174법은 정형외과·외과·정신과·치과·발전문의 등은 별도 한의사 면허 없이도 양의사들이 일정 시간 교육을 받으면 침술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한방업계의 큰 관심을 모았던 침술치료의 워컴(Workers’ Compensation system·종업원상해보험) 혜택 포함 법안도 지난해 무산됐다.

미국에서는 종업원을 고용하는 모든 업소들이 워컴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는데 여기에 한방치료를 포함시킬 경우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부상당한 종업원에게 필요하다면 침술치료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캘리포니아주에는 관련 치료법에 대한 허가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워컴이 침술치료 혜택도 포함하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난 후에 서명 여부를 다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밖에 한방 진단권이 법으로 명시되지 않아 수시로 양의사협회로부터 ‘진단권 박탈’ 위협에 시달려온 한의사들은 지난해 ‘한방 진단권 명시’ 규정을 담은 법안을 상정했으나 이 또한 양의사협회의 집요한 로비로 무산된 바 있다. 또한 한의사 면허 취득을 위한 레지던트 기간을 늘렸는가 하면 2년마다 갱신하는 한의사 보수교육 시간도 30시간에서 50시간으로 늘렸다. 이처럼 한방 진료의 수요층이 넓어지면서 한방과 양방의 힘겨루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원영 LA중앙일보 경제부장·캘리포니아주 한의사>

 

 

7 중의학은 ‘자긍심’이 경쟁력 원천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중국 정부의 체계적 육성정책 뒷받침… 유학생 유치 중국침술 세계로 전파
중국의 침술이 세계인들로부터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중국인들의 노력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중국의 한 병원에서 약제사들이 중국 전통약을 조제하고 있다. <경향신문>

중국 침술’은 그동안 중국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노력, 여기에 임상 효과가 만들어 낸 ‘걸작품’이라는 게 의료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세계적인 부호와 명사들이 중국침술의 매력에 흠뻑 빠질 정도로 중국 침술은 이미 ‘세계적인 명품 의료술’이 되었다. 전통의술 하나가 국가경쟁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중국 침술의 기여도는 매우 크다. 동·서양의학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우리의 의료현실에서 중국 침술의 명성은 부러움을 떠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중국침술의 세계적인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톈진의약대 김군 교수(39)는 “중국 침술이 전 세계인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중국인의 (침술에 대한)자긍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정부가 후진양성에 큰 공을 들였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전통의학이 서양의학과 대등한 관계를 갖출 수 있던 것도 결국 정부차원의 전통문화 계승 노력과 지식인들의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중국의술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자산”

실제로 중국 정부는 1956년 전통의학의 맥을 잇기 위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명성을 날리고 있던 유명 중의사들을 불러모아 체계적인 후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당시 중국 전역에서 내로라하는 명의들이 교수진으로 대거 동참했다.

중국 전통의학은 청나라말 불어닥친 서양의학 바람에 밀려 한때 주춤했지만 1956년 정부 주도로 5개 전통 중의학원(중의대학)을 설립하면서 중의학의 재발견이 이뤄진 것이다. 2년 후인 58년에는 전국 각 성에 한 곳씩 모두 26개의 중의학원이 설치되면서 중의학 교육의 체계적인 기초가 마련됐다.

중의학 교육 프로그램이 한창 마련될 당시 마오쩌뚱(毛澤東)은 “중의학은 위대한 보고이니 이를 발굴해 그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말을 항상 강조할 정도로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의료업계 관계자들은 “문화혁명기간 중 ‘인재를 낭비하고 폐습을 부활시킨다’라는 주장 때문에 한동안 전통의학이 냉대를 받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이 당시에도 중국인구의 약 80%가 생활하는 농촌에서는 이 전통의학에 의존했을 정도로 중의학의 맥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개혁개방 바람이 불면서 중국 지식인들은 “세계 제일의 위치에 있는 전통의학은 중국이 인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자산 중의 하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렇듯 중의학은 중국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심지어 1982년 개정된 헌법에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을 발전시킨다’는 조항이 있을 정도다.

‘중국침술’의 세계화에는 무엇보다 ‘유학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 정부는 개방개혁에 즈음해 일어와 영어 등이 가능한 학생을 따로 모아 중의학을 교육하는 한편 이들 중 일부를 미국 등지로 유학을 보냈다. 이들은 전 세계 유학지에서 서양의학을 배우는 한편 중국 전통의학의 우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또 반대로 미국·한국 등지에서 온 유학생을 대상으로 중국침술 등 중국 전통의학을 가르치며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들 유학생들은 졸업 후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 중국침술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일에 일조한다. 김군 교수는 “의사로 양성된 중국 출신 유학생들은 중국 침술 등을 통해 중국의술에 대한 독창성과 신비감을 전하게 된다”면서 “중국 침술도 결국 이들을 통해 세계에 퍼져 나갔다”고 설명했다.

유학제도를 통한 중국 전통의술 전파와 함께 해외봉사단 파견을 통한 중국 침술도 병행했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를 상대로 중국침술봉사단을 파견해 침술에 대한 이해력을 높였다. 침술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중국침술에 대해 호의를 가진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의료체계가 우리나라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침술봉사단 해외 파견 활동

우리나라 한의사와 유사한 중의사는 3가지 분야로 나눈다. 이들은 모두 의사로 통칭되며 중의사는 중의과 전공과 침구 전공, 중약(한약사) 전공으로 분류된다. 중의사는 우리의 한의사와 달리 전통의학과 함께 현대의학도 같이 배우고 현대장비를 이용한 수술도 진행한다. 교육기간은 5년이며 1년간 인턴생활을 마친 후 국가고시를 통해 정식으로 의사가 된다.

중의사를 관리하는 중국 정부 내 중의약관리국은 1986년 7월에 정식 설립되었다. 현재 전통 중의학 분야 종사자 인력은 모두 50만 명이고 1800개 중의 병원에 병상 16만 개가 설치되어 있다. 전국의 서양의학 병원의 95%가 중의과를 두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130만 명의 마을 초급의사는 간단한 중의요법과 약초, 그리고 질병방지를 위한 침술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중의과 및 중약대학 30개 대학이 설립되어 이들 전문 교육기관에서 대학원 석사·박사과정 학생을 배출하고 있다.




인터뷰 | 톈진중의약대학 김군 교수

“중국침술 탁월한 효과 세계인이 사랑”

3년 전 중국에서 대전대학교 한의대에 교환교수로 온 김군 교수(중국 톈진중의약대학)는 “중국 침술이 세계적인 의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식인들의 도움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선족 출신인 김 교수는 누구보다 한의학 발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 교수를 통해 중국 침술의 경쟁력을 들어봤다.

- 중국 침술이 세계적인 의술로 각광받고 있다.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국 침술의 탁월한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효과가 없는 의술은 세계인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실제로 중국 침술은 오랜 역사를 속에 체계화한 경험의학이며 이미 다양한 효능을 통해 검증을 받았다. 중국 침술이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까닭이다”

- 중국 침술 발전에는 무엇보다 정부지원책이 컸다고 하는데.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침술에 대한 투자와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또 이를 표준화했고 전국의 각 지역에 교육기관을 대거 만들었다. 특히 지역별로 특성에 맞는 전문 분야를 집중육성했다. 예를 들어 천진중의약대학은 침술로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침술 분야에서 명의로 불리는 ‘원사’도 천진중의약대학 출신 한 명이 유일할 정도다.”

- 서양의학과 갈등도 있었을 텐데.

“예전에는 서양의학에 대한 배타적인 생각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서양의학의 장점을 서로 극대화하면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의과대학의 커리큘럼도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함께 배우게 되어 있다. 동서양 간 편가르기보다 서로 보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배울 것은 서로 배운다.”

- 한의학과 중의학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데.

“맞는 말이다. 중의학과 한의학의 근본 뿌리와 원리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만큼 한의학과 중의학은 가깝다. 앞으로 동양 의술에 대한 장점을 찾아내 이를 극대화 하는 데 앞장 설 생각이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최근 대전대에서 ‘자혈요법(刺血療法)’이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출신 중의사로서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한국에서 일정이 마무리 되면 중국으로 돌아가 한의학에 대한 연구 결과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생각이다. 한의학도 세계적인 의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한국의 의술 교류에 가교 역할을 할 생각이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8 외국자본, 한의학 시장을 노린다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진단의 과학화·한약재 표준화 통해 경쟁력 있는 의학으로 올라서야
한·미FTA 반대시위대가 지난 1월 15일 미국측 FTA협상단의 입국을 기다리고 있다. <이상훈 기자>

‘노후가 보장되면서도 격무가 없는’ 전문직으로 단연 한의사가 꼽힌다. 포항공대 수석 입학·졸업자가 졸업 후 다시 지방 한의대에 입학할 정도로 한의사는 ‘매력적인’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한의대에 입학하면서 직업으로서 한의사가 거쳐야 하는 모든 경쟁은 끝나게 된다. 또한 사회적 명성, 고소득, 편한 업무, 위험에의 노출 수위가 낮다는 점 등 ‘철밥통’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한국 한의사는 그랬다.

이 같은 사정은 개별 한의사를 넘어 한의사 업계 전체를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업계 전반이 ‘명의’라는 이름이 붙은 몇몇 특정인의 개인적 명성과 업적에 의존해 왔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한의사는 “임상 중심의 ‘스타 한의사’는 더러 있지만 한의사계는 사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지난 1월 한 달은 한의사 업계의 ‘비상시국’이었다. FTA의 파고가 한의사들에게도 몰아닥친 것이다. 한·미FTA 협상 테이블에 한국 한의사와 미국 침술사의 자격 상호인정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대두하였다. 전국 1만6000명의 한의사들이 지난 1월 10일 일제히 ‘1일 파업’을 단행하는 단결력을 보였다. ‘국민건강수호를 위한 전국 한의사 비상총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총궐기대회도 가진 것이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학제와 학과과정 등이 근본적으로 달라 한·미FTA에서 한의학 개방 논의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한의사 시장개방이 ‘현실성 없음’으로 가닥이 잡히자 떠들썩했던 한의학계에는 연말연초의 소란스럽던 분위기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 한의사·미국 침술사 교류 요구

그러나 이 같은 ‘안도감’도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 쪽에서 주장하는 한국 의료체제의 특이성(한·양의학 이원화)도 개방 압력을 막아낼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아님을 한의학계도 인정하고 있다. 한의사 시장개방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이다. 의료시장개방의 가장 큰 쟁점은 외국자본의 의한 영리법인인 병원의 설립이다. 강연석 민족의학신문 사무총장(한의사)은 “의료행위는 문화장벽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에 의료진의 교류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고 전제하면서 “특히 한방 분야는 양방에 비해 문화적 벽이 훨씬 더 높다”고 말했다. 강 사무총장은 “그러나 문제는 의료 시장이 개방되면 거대 자본이 들어와서 최고의 의료진을 흡수해갈 것”이라면서 또 “문화적 차이가 적은 중국과는 의료인력의 이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의료인력 ‘이동’의 의미가 ‘왕래’가 아니라 ‘유입’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중국이 벌써부터 의료인력 이동의 허용을 우리 측에 요구해 오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중국은 중의학을 앞세워 우리나라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민족의학자인 탁성훈씨가 한 환자의 손을 살펴보고 있다. <박원태 기자>
문제는 중의학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종수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베이징중의대·텐진중의대 등 일부 대학은 경희대 커리큘럼을 그대로 원용하고 있다”면서 “물론 한국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긴장감을 드러냈다. 중국은 2003년 이후 매년 300억~500억 원 상당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 특히 중의학의 메카로 불리는 텐진중의대는 정부지원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1년에 40여 개국에서 수천 명이 중의학 치료를 받고 하루 내원환자는 5000여 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투자에 비하면 참으로 부끄러울 정도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동안 한방치료기술 연구개발비 예산은 고작 328억4000만 원이었다. 또 중국은 의사 자격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의사면허 합격률은 15%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은 한·양의학 모두 80%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수만 명에 이르는 미국 침구사도 위협적인 요소이다. 미국 침구사 중에는 한국인이 약 1만6000명 포함되어 있으며 중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한국 내 면허자격을 갖춘 한의사는 1만6000명에 불과하다. 그들의 일부만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한의학 시장이 교란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거대자본, 최고 의료진 흡수해갈 것

시장개방에 대비한 한의학계의 체질 개선도 절박하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한의학계는 아직까지 느긋하기만 하다. 한의학의 세계화란 국내 시장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한방’을 ‘세계의 의학’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한의학의 정체성 확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중국과 일본 정부는 의사에게 양의학과 중의학 병행치료가 가능한 자격을 부여한다. 진단은 누가 해도 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의료의 원칙이다. 치료방법은 달라도 효과는 같아야 한다는 것도 의학의 진리이다. 그런 전제에서 치료방법의 선택권을 의사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동서결합(東西結合: 양의학으로 진료하고 중의학으로 치료함)를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 의사가 한국에 들어와서 의료행위를 할 경우, 그들은 양의사와 중의사 두 가지의 자격을 갖고 있어서 자신의 편의에 따라 치료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 이종수 교수는 “우리는 CT나 MRI 같은 첨단진료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혈액검사도 양의학 병원에 위탁해야 한다”면서 “이는 본질적으로 정책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의사 시장의 개방에 앞선 대전제는 의료법 개정이라는 것이다. 박시한의원 박철수 원장은 “의료법만 제대로 되어 있어도 한의사 개방에 대비할 수 있다”면서 “결단코 침구사 등 유사의료 행위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의대와 법대를 거쳐 경의해 한의대에 편입학해 언론에 주목을 받았던 최용규씨. <박형주 기자>
중의사의 한국 진출이 크게 위협적인 반면 우리나라 한의사의 중국 진출은 바라기 어려운 일이다. 박철수 원장은 “중국에서는 한국의 의사면허증을 활용할 수 없다”고 단정하면서 “근본적으로 중국에서 보는 중의학과 한의학의 체제가 서로 다르고 더욱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돈벌이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침구사는 진단권이 없는 유사의료 행위자이다. 정규 의료인력이 아니다. 의료체계가 ‘한의사’와 ‘의사’로 이원화되어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한의사가 개인적으로 미국에 진출하려면 ‘의사’로 취업비자를 얻게 되지만 막상 미국 내에서는 의사가 아닌 침구사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한의사 아닌 침구사만이 존재하고 침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철수 원장은 “본국에 없는 한의사 면허를 한국을 위해 만들 리가 있겠느냐”고 말한다. 결국 한의사 중에 누가 침구사 대접을 받으면서 단지 돈벌이만을 위해 미국으로 나가겠느냐는 얘기이다.

문제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나치게 이분법적 사고를 해온 것 아니냐는 게 한의학계의 지적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법조항들도 있다. ‘한의원에서는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의 행위를 할 수 없고…(의정 65507-914)’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종수 교수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결국 한의학계에서 나서 찾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한의학계 자체적으로도 정체성 논의를 진지하게 전개시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 한의사는 “양의학을 통한 진단을 거부하는 한의사들이 거의 절반이나 된다”고 말했다. 한의학의 정체성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 한의사들의 이 같은 태도는 결국 불합리한 의료제도 논쟁과 함께 진료자율권의 침해논란을 낳아 한의사의 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장기적 관점선 우리에게도 기회

다행히도 최근 들어 학계와 업계 내부로부터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개선 의지도 점차 확고해지고 있다. 정부는 양·한의학의 공동개업을 가능토록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오는 7월부터는 병원경영 지주회사의 설립이 허용될 방침이다. 이는 2005년 10월에 추진됐던 국내외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설립 허용보다는 다소 후퇴한 것이다. 하지만 한의사가 양의사를 고용하고 양의사도 한의사를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한·양의학 공동개업). 사실상 한·양의학의 일원화 즉 한·양의학의 협진이 법제화된 셈이다. 백승일 박사(한의사·호일침학회 회장)는 “이는 민간인이 한·양의사를 고용할 수 있는 영리병원법인으로 가는 중간단계”라고 규정하고 “한·양의사들이 출자해서 프랜차이즈 병원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법인 형태로 개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개방에 대비한 또 다른 핵심은 진단의 과학화와 한약재의 표준화이다. 표준화와 과학화는 한의학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안전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중대한 문제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한의사계에서는 ‘한의사의 적은 농수산물 홈쇼핑’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농수산물 홈쇼핑에서 ‘보약(강장식품)’까지 판매하고 있는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어느 한의사는 “고객들이 왜 ‘보약’마저도 홈쇼핑에서 사겠느냐”고 물으면서 “결국 한의사들의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자답했다. 그는 이어 “이제 (당연히 침 치료를 찾던) 중풍환자도 한의사를 찾지 않는다”면서 “치료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보약)장사나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장개방은 뒤집어서 얘기하면 곧 세계화다. 한의학 세계화의 대전제는 재현성(같은 치료에 같은 치료효과), 객관성(같은 증상에 똑같은 치료), 체계성(진단 및 임상의 조직화) 등이다. 그러나 일상적 치료용어조차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진료차트도 통일성을 갖지 못했다 . 이런 상황에서 한의학의 세계화는 요원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부분은 정부보다는 한의학 스스로 규칙을 정해가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한의학계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도 최근 한약재의 표준화와 안전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식품(의약품 포함) 위해물질 정밀검사 대상을 현행 94종목에서 2010년까지 520종목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한약재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품질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우수한약재배관리기준, 우수한약제조관리기준, 우수한약유통관리기준 등 한약 관리기준도 마련해 2010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대체의학 시장은 지난 2002년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한의사 시장이 개방된 뒤 우리 한의학은 세계시장과의 경쟁 속에서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백승일 박사는 “시장이 개방되면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장은 중국과 미국인들에게 한국시장이 매력적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곧 역전되어 한의학이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백승일 박사는 “서양 사람이 쓴 책으로, 그들이 만든 치료기기를 갖고 그들에게 배운 기술로, 그것도 소자본으로는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며 “그러나 한의학은 한국만의 뛰어난 인력과 기술로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개방, 그것은 곧 세계의 고객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결코 국가가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의학계의 대비가 그만큼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9 “보양의학이라는 편견 우리 스스로 바꿔가자”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이제 갓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예비)한의사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동철·김현정·이한창·강병수·김호석·박병천·이재열씨.

올 2월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와 예비한의사 7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올해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한 이재열씨(24·공중보건의 예정)와 김호석씨(28·공중보건의 예정), 원광대 한의과대를 졸업한 박병천씨(24·경희대 대학원 진학), 경희대 한의과대를 졸업한 이한창씨(24·한의사국가고시 준비중), 대구한의대를 졸업한 김현정씨(31·마산이병직한의원 부원장)와 김동철씨(26·취업 예정), 대전대 한의과대를 졸업한 강병수씨(25·공중보건의 예정)이다. 이제 갓 사회에 나온 이들은 ‘한의학의 위기’의 원인으로 ‘커리큘럼 등 학교 교육 과정에서의 문제’와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 미비’ 등을 꼽았다. 그리고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 연구 부진’에 대한 기성 한의학계의 자성의 목소리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한의학의 앞날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치료의학으로서 한의학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젊은 한의사가 꾸준히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학회 활동이나 프랜차이즈 형태의 한방병원 설립 등 각종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임상 및 연구데이터를 축적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동철 | 한의학의 위기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다. 현재 침술로써 미국과 캐나다 등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간 중국이 좋은 모델이다. 중국은 마우쩌둥의 정책적 지원 아래 침술을 비롯한 중의학을 적극적으로 연구, 보급했다. 특히 1975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일을 계기로 서방세계에 중국의 침술을 극적으로 소개하면서 중의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중국은 현재 베이징중의약대학 등 94개 대학에서 중의학과 침구학을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국가적 지원이 빈약한 가운데 관련 연구도 부진한 편이다. 한의사 개개인의 노력과 성과에 의존할 뿐,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국가적인 연구단체가 매우 부족하다.

김현정 | 동감한다. 서양의학계 등 외부에서 한의학계를 공격할 때 흔히 경락이나 약의 효과에 대해 실험적 데이터가 있는지, 연구 실적이 있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우리 한의학은 충분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이 빈약해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형편이다. 연구 방향도 지원금 규모에 따라 달라지기 십상이다. 문제는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위정자들이 약사나 의사 출신이 많아 서양의학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한의학을 본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부인도 약사 출신이 많다. 지금 중의학이 한의학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한의학이 위기라고 오해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의학이 우수함은 물론이고 실력이 뛰어난 한의사도 많다.

이한창 | 2008년 국내 최초의 국립한의학전문대학원이 부산대학교에서 개교한다. 국립대학에 한의과가 생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국립 한의대 설립은 수십 년 간 한의계가 갈망하고 정부에 요구해온 사항이어서 관철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한의학이 힘을 얻으려면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서울대에 설립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의대가 반대해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대에 국악과는 있으면서 우리 민족의학인 한의학과가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나라의 의학을 서울에서 안 키우고 왜 자꾸 지방으로 밀어내는 것인지 묻고 싶다.

김동철 | 한의와 관련한 모든 정책이 힘이나 정치적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국가 지도자나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모두 한의학에 대한 마인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 등 세계 각국은 동양의학 등 대체의학이 각광받고 있다.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서양의학에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유로베다, 티벳의학, 인도의학 등이 새로운 큰 시장으로 부상했다. 우리는 이런 세계의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병수 | 대중이 한의학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예전 선배 한의사들이 환자를 대할 때 분위기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은 치료의학이 아닌 보양의학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한의학계의 자성과 변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한의대를 막 졸업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다. 한의학의 비전이나 발전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흔히 생각하는 두 줄기는 원전(原典)으로의 회귀이냐 서양의학과의 불안전한 결합이냐이다. 또 학교교육을 통해 얻는 것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큰 혼란을 느끼고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한의학자보다는 약을 잘 쓴다, 침을 잘 놓는다 하는 한의사들이 훨씬 더 훌륭하게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한의사로서 제 몫을 하려면 별도의 스터디를 통해 한의학 공부의 상당부분을 채워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재열 | 한의학적 사고의 바탕은 종합하고 한 번에 꿰뚫어 보는 것이라면, 서양의학은 분석과 분류이다. 그런데 현재 대학의 한의학 교육은 서양의학의 형식에 맞춰 개설돼 있다. 커리큘럼을 처음 도입할 때 그렇게 만든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내과의 경우 간(肝), 심(心), 비(脾·척추동물의 림프계 기관), 폐(肺), 신(腎·콩팥)으로 나누어 배운다. 외과도 피부외과, 안이비인후과 등으로 분류돼 있다. 수업부터 실습에 이르기까지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구분해 학습한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같은 서양의학적 분류방식이 한의학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의학적 정체관(整體觀 : 인체 내부의 통일성과 완전성을 중시하며 나아가 사람과 자연의 조화와 통일을 중시한 한의학의 중심사상)에서 보면 각 장기를 따로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간을 보지만 처방할 때는 콩팥을, 피부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폐의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게 한의이다. 때문에 커리큘럼도 한의학의 특성에 맞춰 대폭 수정해야 한다. 동양학문을 서양 제도에 꿰맞추는 것은 무리이다.

김동철 | 부실한 교육환경도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교수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학교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정원이 30명이든 120명이든 담당 교수의 수는 거의 차이가 없다. 대개 100여 명의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한다. 의학은 실습을 통해 배워야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양질의 실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한의대나 한의과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교수 확충도 잘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들이 교육여건을 개선해달라고 하면 학교는 돈이 없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학습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한의대생의 학습량은 의대생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학생들이 열의를 가지고 공부할 교육여건이 조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수들도 수업 외에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 연구나 교육에 100% 매진할 수 없다.

김호석 | 동국대 의대와 비교할 때 등록금 차이가 거의 없다. 의대는 실습을 많이 하는데 비해 한의대는 등록금에 비해 실습량이 적어 아쉽다. 실습 기자재도 크게 부족하다.

강병수 | 원전에 충실한 쪽으로 학교 커리큘럼이 짜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의학 특성상 표준화가 어렵기는 하다. 한의는 한의사 각자의 관점에 따라 질환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성이 매우 큰 학문이다. 그러나 같은 증상이나 질환에 대해서 교수들마다 각자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아직 정체관이 형성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원전에 충실한 커리큘럼이 좋다고 생각하다. 현재는 수업 내용에 따라 그 근거가 되는 원전의 일부를 발췌해 알려주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그보다는 시대 순서에 따라 원전 한 권 한 권을 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탐구하는 형식이 좋을 것 같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나름대로 원전을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뒤 서양의학을 더불어 배운다면 필요한 부분은 취하고, 비판할 부분은 비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재열 | 솔직히 한의과대학에 입학해 실망한 부분이 있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을 통해 기계론적 사고에 물들어 있다가 한의학 용어를 처음 접하면서 혼란을 겪었다. 단어도 모두 한자로 이루어져 있어 그 의미를 깨닫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어려움을 느낀 학생들이 다시 수능시험을 쳐 의대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김현정 | 내 생각은 다르다. 의대는 6년의 학교 교육 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은 후에야 환자를 본다. 한의대생들은 너무 욕심이 많다. 6년 만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내 생각에 가장 큰 문제는 초·중·고등학교에서의 교육이다. 동양적 사고나 사상이 배제된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환자도 한의사에 대한 신뢰를 덜 갖게 된다. 한의사가 환자에게 한의학적으로 설명해 납득시키는 것도 매우 어렵다. 한의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고충도 맥을 같이 한다. 20년 가까이 서양의학 패러다임에 물들어 있는 사람이 예전의 동양적 사상을 받아들이려면 상당히 많은 고민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 더하기 1은 2라는 산술적 답에만 익숙했던 학생들에게 철학인 한의학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외우기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통해 어린시절부터 한국인들이 동양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한의학도 더 융성할 수 있다. 한의대생들도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이한창 | 청소년들에게 음양오행이나 하다못해 소학 또는 천자문이라도 배우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동양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교육이 필요하다. 기계적인 교육은 100년 전의 일이고 이제는 다른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병수 | 한의학이 치료의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목표의식을 가지고 가야하는지를 이야기했으면 한다. 어떻게 보면 한의학계는 지금 과도기를 겪고 있다. 우리는 4~5년 전부터 임상케이스가 모여 객관적인 치료데이터를 마련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의사 간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를 통해 앞으로 객관적이고 검증된 결과물을 속속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현재 한의사 개개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이러한 작업이 보다 거국적 차원에서 진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한창 | 요즘 한의학 관련 학회가 많이 생기고 있다. 이를 통해 이제 막 임상케이스를 축적해가고 있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서양의학은 임상케이스를 쌓은 지 오래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가 한의사 자격증의 상호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막 피려는 한의학에 심각한 저해요소가 생긴 것이다. 지금 한미FTA 요구대로 한의사를 개방하면 어린애와 어른이 싸워야 하는 형국이 된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탄탄한 자본이 있지 않은가.

김현정 | 개원한 한의사들이 비만이나 키성장 등 돈이 되는 것에 주력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것은 의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피부과나 성형외과, 안과로 의사가 몰리고 있다. 그만큼 그 분야에 대중의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이한창 | 보약을 주로 처방하는 선배 한의사들을 욕할 수 없다. 과거에는 그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20~30년 전에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분들에겐 보약이 치료약이었다. 하지만 먹을 게 많아진 지금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빼주고 소통시키는 게 각광받는 시대이다. 비만클리닉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다만 한의원마다 약값이 다른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약은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통시키는 약은 비쌀 이유가 없다. 또 일부 한의사는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처방을 한다. 그런 한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다가 효과를 보지 못한 젊은 사람의 경우 한의 전체에 실망을 할 수 있다. 차라리 약값이라도 일반 약처럼 싸면 모르는데 약값은 약값대로 비싸니까 부정적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한의사 스스로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현정 | 한의사 대다수는 침을 놓는다. 근육계통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한의원 매출을 올리는 것은 약이다. 침에 대한 의료수가가 낮아 안 쓰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김동철 | 의료수가를 정할 당시에는 한의원에 약을 지으러 오는 환자가 많았다. 침은 약을 지어주면 공짜로 놔주거나 1000원 정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일반인도 침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 침이 주목을 끌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침에 대한 의료수가로는 한의원 경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현정 | 의료수가가 올라가면 한의사들이 침을 더 많이 쓰게 되고 침술도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지금 환자가 침을 한 번 맞는 데 드는 비용은 3000원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도 3000원어치의 효과만 기대한다. 의료수가가 높아지면 환자의 기대치도 높아지고 한의사도 그에 부응하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될 것이다.

김호석 | 침구과 교수님도 하신 말씀인데 침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그래서 십수 년의 내공이 필요하다. 1~2년 공부하면 침을 놓을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동철 | 의협은 한의사가 CT(컴퓨터단층촬영장치) 등 양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기기에 대한 그들의 독점권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료기기를 의사가 발명한 것인가? 한의사든 의사든 초음파기계나 CT를 통해 보다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면 사용해야 환자를 위해 좋은 것 아닌가.

김동석 | 정형외과 의사들은 ‘IMS’(근육에 침 같은 바늘을 찔러 넣는 자극 치료)를 쓴다. 그들도 한의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마치 한의사들만이 서양의의 독점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박병천 | 양·한방 협진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쉽지는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질환에 따라 서양의와 한의가 같이 치료를 하면 유리한 것이 있고, 전혀 별개로 치료해야 좋은 것도 있다. 가령 학습부진을 겪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병원을 양·한방 협진으로 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양의학 중 정신과를 전공한 의사는 학생의 학습부진 이유를 대화를 통해 알아내고 학생이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한의사는 한약을 통해 뇌의 활동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기초체력도 보강해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협진체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재열 | 난 회의적이다. 우리가 의대생 만나서 느끼는 불편함이 협진체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날 것 같다. 우리는 학교교육을 통해 서양의학을 배우기 때문에 의대생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데 의대생들은 우리가 한방을 이야기하면 못 알아듣는다. 협진을 한다고 할 때 서로의 학문에 어느 정도 이해가 구축돼 있다면 서로 상의해 환자를 위한 보다 나은 치료법을 도출해 낼 수 있겠지만 의사소통 자체가 어렵다면 문제가 있다.

이한창 | 한의학을 공부하는 나도 병원을 아주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급성일 때는 서양의학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운이 허약하다거나 약으로 몸이 피폐해진 환자의 몸 상태를 호전시켜 주는 것은 한방이다. 은근히 천천히 보해 주는 것이다. 가령 병원에서 수술을 한 뒤 한방으로 기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들 수 있다. 지금은 환자 스스로 알아서 의사도 찾아가고 한의사도 찾아가는데 한 병원 내에 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있다면 환자를 위해 좀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10 한의학,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라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한·미FTA 이어 올 한·중FTA 협상 시작될 듯… 큰 파고 견뎌내야
한의사들이 한 한방치료 세미나에 참석해 경청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12월과 1월에는 몇 차례에 걸쳐 유명 포탈사이트의 초기화면에 한의학 관련 뉴스가 실렸다. 바로 한·미FTA 협상 내용 중 하나인 한국 한의사(doctor, 의료인)와 미국 침구사(acupuncturist, 유사의료업자)의 상호 자격인정 문제 때문이었다.

양국의 자격의 차이가 워낙 커서 한국 측 협상단이 거부하겠다고 밝혔지만 FTA 협상의 성격상 의사, 치과의사 등 의료인의 상호자격인정이 합의된다면 한국 한의사와 미국 침구사, 또는 한국 한의사와 미국 의사 간의 상호자격인증이 이뤄질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한·중FTA도 올해 중에 시작될 예정이라 하니 한국 한의사시장을 둘러싼 대학교육시장과 국민건강의료보험의 재정이 이러한 충격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필자의 기억으로 한의학 관련 문제가 수차례에 걸쳐 언론사와 일간지를 장식한 사건은 1990년대 한약분쟁 이후 처음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의사들과 다국적 기업인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및 9만여 명의 한국 내 양의사들이 만들어내는 의학 관련 뉴스를 모든 일간지와 언론매체에서 1년 365일 쉴새없이 쏟아내는 요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한의학 관련 뉴스가 일간지와 언론사의 주요 뉴스로 떠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이는 암암리에 국민들로 하여금 아프면 당연히 양방 병의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도 했다.

중풍환자를 침으로 치료하고 있는 경희대 의료진.
동네 의원과 중소 병원들의 운영이 최근 2, 3년 사이에 한결같이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이는 양방이나 한방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내 경기가 전반적으로 나빠졌기 때문이긴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교통이 편리해지고 의학정보가 쏟아지면서 사람들이 보다 크고 시설 좋은 병원을 찾게 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또 의료의 상업화도 한 이유이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를 유인하고 알선하는 행위와 의료광고가 엄격히 규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광고가 이뤄져왔다. 의사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지 광고를 하지 않는 병의원들은 점차 소비자의 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현재 의·치·한의사협회 모두가 반발하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의 경우 의료기관의 급속한 영리화, 대형화를 유도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광고를 폭넓게 허용하고, 진료비 할인을 통해 환자들을 유인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수십만 원에 이르는 중고등학생 교복값에 톱스타를 동원한 광고비가 포함되어 거품이 심하다고 하는 것처럼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진료비의 가파른 상승을 초래할 것이다.

의료법 바뀌면 진료비 크게 오를 듯

양방 병원보다는 한 발 뒤쳐졌지만 한방 병원도 점차 대형화하는 추세이다. 이 같은 현상은 환자들에게 보다 쾌적한 진료 환경을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지만 근본적인 의료서비스 수준은 소규모 의원과 비슷한 수준이면서 결국 진료비만 상승시킨다는 부정적 측면도 크다.

경희대학교가 지난해 서울 고덕동에 동서신의학병원을 지었고, 부산대학교는 한의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하였다. 경희대는 지난 50여 년간 제3의학 창출이란 목표를 내걸고 한의과대학을 운영해왔으며 이 같은 목표는 동서신의학병원이란 이름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또 부산대의 한의학전문대학원은 국립대학교에 한의학 교육기관이 생기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한의대는 현재 11개 사립대학교에만 설치돼 있다.

한의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 속에 등장하긴 했지만 이들 기관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동서신의학병원은 경희대 의대 학생들이 수업거부 등으로 반대의사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학교본부 측에서 생각했던 협진체제가 쉽사리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한?양방 교수진들의 협력도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로 연구하고 공부해온 것이 달라서 의료사고가 났을 때 어느 쪽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상호 신뢰가 없다는 게 더욱 큰 문제이다.

경원대 한의대생들이 저소득층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한의학과 양의학 간의 이 같은 불신은 아직 학생을 뽑기도 전인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을 둘러싸고도 일어나고 있다. 의사협회에서 국립대학 내의 한의학교육기관 설치를 반대하였고, 설치결정이 난 이후에는 부산대 의대 교수들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여야 한다거나, 한의학을 양의학에 흡수통합할 새로운 모델로 만들자는 등 선제공격을 가해왔고 또 한의계는 그에 또 일일이 맞대응해왔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한국의 한방 시장을 새로운 블루칩으로 여겨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정작 국내 한의계는 여기저기에 발목을 붙잡혀 대응할 시간조차 변변히 마련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 약사, 치과의사 등과 달리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회의원 한 명 배출해내지 못한 한의계의 정치력으로는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기는커녕 점점 더 상황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실상이다.

한의학계 내부 진정한 리더십 필요

현재 한의계가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의계 내부의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때의 리더십은 물리적이고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철학적이고도 매우 학술적인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아직 한의계 내부에는 한의계가 처한 위기상황을 기회로 바꿀 만한 리더십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어쩌면 한의계 전체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러한 리더십의 부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 모택동 주석이 중서의결합(中西醫結合)을 목표로 삼아 발전시켜 왔으나 1980년대 이후 이러한 결합의사들은 중?서 어느 쪽에도 능통하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의 경우 의사들이 1차 진료를 포기하고 3차 진료만을 선호하는 가운데 스스로 위기상황을 초래한 반면, 보건지소와 기업체 부속 한의원에서 제공되는 한의사들의 1차진료 내용이 양방 쪽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한의계는 분명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몇몇 지표는 위기와 함께 기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식약청에서 실시한 한 연구보고서에는 질병치료를 위해 한약을 복용한다는 대답이 2005년도 조사에 비해 1.4배 정도 늘어났고, 87.5%는 한약의 효과에 만족한다고 응답하였으며, 83.6%가 향후 한약을 계속 복용하겠다고 하였다. 또 2000년 이후 국민건강보험의 급여를 받는 침과 뜸 등의 치료행위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약재의 수입량은 줄었다. 이는 보약에 의존하던 한의원 진료가 침과 뜸시술, 그리고 치료를 위한 한약 복용 쪽으로 점차 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빠른 시간 내에 내부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잡아내는 한의계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강연석 민족의학신문 사무총장·국회한의진료실장
yeonkang@mjmedi.com

 

 

한국침술, 세계화 향한 도전 필요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치료요법 개발보다 보약판매 집중… 세계시장 진출 걸림돌
국가적 차원에서의 한의 침구학의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한국의 침구학과 중국의 침구학 모두 다양한 침구치료기술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치료기술을 비교하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침구학은 오수혈(五輸穴)을 이용한 오행침법(五行鍼法)을 특징으로 하여 발전돼 왔다.

침구치료는 경락에 침을 놓아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인체에는 대표적으로 12개의 경락이 전신을 순행하고 있고 그 경락의 흐름 위에는 표준 경혈점이 361개 있는데 오수혈(五輸穴)은 주슬관절, 즉 팔꿈치와 무릎 아래에 있는 경혈점이다. 각 경락마다 5개의 경혈점이 있어서 오수혈이라고 한다. 마치 물이 지하에서 샘솟아서 작은 시냇물, 강물이 되어 흘러가 옥토를 살찌우듯 오수혈에 흐르는 기의 흐름이 인체 오장육부로 퍼져 기운을 공급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원리다.

어디가 아플 때 어떤 혈자리, 어떤 병에는 어떤 혈자리 하는 식으로 침 처방을 정리하지 않고도 환자의 상태와 병증의 양상에 따라 치료방법을 맞춤형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침법이다.

임상연구 도입된 지 5~6년에 불과

우리나라는 아플 때 손끝과 발끝의 혈자리를 따는 민간요법이 널리 퍼져있다. 경락의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여 과부하가 걸려있거나 꽉 막혀있는 상황에서 특별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즉 급체, 고혈압, 실신 등의 응급상황 때 경혈점을 예리한 침으로 자입(刺入)하여 사혈을 시킴으로써 병세를 호전시키는 것이 한국의 전통침이다.

한국의 침구치료기술은 다양한 질환에서 그 치료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에는 고혈압과 고혈압 전단계의 환자에게서 침치료가 혈압강하효과를 보인다는 임상연구 보고가 있었다. 한국의 침법인 격팔상생역침, 황구침법, 평침화침, 곡운침법 등 임상에서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침치료 기술을 고혈압 환자에 적용하여 임상연구를 실시한 결과다.

고혈압뿐만 아니라 임상에서는 다양한 난치성 질환에 대한 침구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임상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임상 연구를 통해 침치료의 효능을 검증해내고 이를 축적해 기술화?학문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침구경락 연구거점 기반구축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최선미 의료기술부장은 침구학의 표준화와 치료기전 규명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좋은 침구치료법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도 이를 잘 다듬어 표준화시키지 않으면 쓸모가 없으며, 임상효능 검증과 치료기전 규명 등을 통해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는 일이 따라와야 한다. 동시에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한의학의 경락도와 장부도. 침구치료는 경락의 기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동 사업과 관련해 작년말 12건의 연구 성과가 발표됐다. 수치상으로는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임상과 학문 양쪽 모두 활용도가 높은 결과물이 나왔다는 게 연구원 측이 내놓은 중간평가다. 하지만 연구원도 실험대상이 됐던 환자들 모두가 침의 효과를 인정하며 만족감을 표시했지만 치료기전 규명과 데이터 확보에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 침구학계의 공통 과제는 ‘치료 효과에 대한 근거 자료를 축적하는 일’이다. 문제는 이 같은 과제가 한두 연구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한의학연구원 측은 “한의원 단위의 대규모 관찰연구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욱 다양한 기관과 한의원에서 많은 한의사와 연구원들이 참여한 속에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석대 한의대 장인구 교수는 “한의계에 임상 연구가 도입된 것은 5~6년에 불과하고 일부 연구자들이 실제 임상연구에 뛰어든 것은 고작 2~3년밖에 되지 않았다.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는 연구자들이 임상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생겼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연구 결과를 축적해 나갈 때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 교수는 말한다.

침구경락 기반구축 사업에 기대

한의사들이 수익상의 이유로 침 등 치료요법의 개발보다 보약 판매에 집중하고 있는 현실도 자주 지적되는 문제 중의 하나다. 한의 개업의들의 이 같은 태도가 침 연구의 데이터 축적을 어렵게 하고 한국 침구학을 세계화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전대 홍권의 교수는 “지방의 일부 한의원들이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침술은 여전히 한의계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중요한 진료 방법 중의 하나”라며 그 같은 시각을 반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만큼 침술이 임상에서 활발하게 적용되는 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한의사의 한방진료 중 침구시술이 99%를 차지하고 침구시술을 수반하지 않는 단순한 한약투여는 1%에 불과한 실정이라는 게 한의계의 주장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내놓은 자료에서도 침구시술은 한방진료 부문 전체에서 건수로는 99%, 청구금액으로는 4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침구시술이 진료과정에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과연 그에 걸맞는 연구가 수반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학회에서 연간 수천 편의 임상논문이 발표되고 그중 20~30편은 해외 유수 저널에 실리고 있다는 사정도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물론 의사와 한의사는 그 수부터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한의학 관련해 활동하고 있는 상당수의 학회들이 임상 연구와 발표에 무관심한 채 친목회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 전통 침구학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이미 세계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 침구학의 존재이다. 중국 침구학의 영향을 받은 미국도 이미 20여 년 전부터 매우 정치한 수준의 이론적 연구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침구학이 역으로 국내에 수입될 날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침구경락 연구거점 기반구축사업’은 그나마 한국 침구학의 세계화를 향한 첫 번째 ‘작은 시도’로 인정받고 있다. 이 사업을 계기로 한의계가 진정한 노력을 계속할 경우 한국 침구학의 표준화, 과학화, 세계화 과정은 그 험난한 여정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기홍 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출처 : Tong - pju1014님의 기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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