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없는 고소득 전문직종. 보약을 지어 파는데 안주한 한의학.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고의 한가운데 섰다.
전통침의 재발견과 표준화를 통해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는데…
위기의 한의학을 되살릴 방안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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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락이 표시된 목각인형. <김재구 기자> |
한의학이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의학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고의 한가운데 있다.
좋든 싫든 세계화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한의학 역시 이 도전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다.
바로 이 접점에서 위기와 기회가 양날의 칼처럼 한의학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세계 시장을 먹느냐, 아니면 세계 시장에 먹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얘기다.
의료시장 개방은 어제 오늘의 화두가 아니다.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실상이다.
한의사 시장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한의사가 한국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한의대를 졸업해 닥터 면허증을 지닌 외국인 한의사가 한국 한의사 시험에 합격하면 국내 활동이 가능하다.
자격 미달로 간주된 미국의 침구사들은 제외돼 있기 때문에 한·미 FTA 협상에서 이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개방
설사 한의사 시장 개방이 미뤄진다 해도 결국 올 것은 오고야 만다.
무한정 개방의 시기를 늦출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의료시장이 완전 개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년이 없는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보약을 지어 파는 데에만 안주해서는 한의학의 미래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 확실하다.
세계적으로 전통의약에 대한 시장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1998년 850억 달러에서 2002년 1000억 달러, 2006년에는 1500억 달러로 증가했다.
WHO 보고에 따르면 서구, 북미 인구의 50% 이상이 전통의약 이용 경험이 있다.
고령화 사회가 더욱 진전되고 만성·난치성 질환의 치료가 의학계의 핵심 테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 전통의학의 장래는 어둡지 않다는 것이다.
한의학계 내에서는 현안이 되고 있는 의료시장 개방 문제도 세계 시장 확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적극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형주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은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한약 제품과 한방 의료기기 등의 연구와 개발에 집중 투자해 국내외 시장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학 치료는 첫번째가 침술
한의학의 위기를 전통침의 재발견, 표준화를 통한 세계화로 돌파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력히 개진되고 있다.
정부 투자 한의학 연구소인 ‘한국한의학연구소’는 최근 ‘침구경락연구 거점기반 구축사업’을 적극적으로 드라이브하고 있다.
한국 침구치료기술의 효능검증과 기전연구를 통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여 한국 침구학을 세계화하기 위한 연구 수행이다.
▲임상 실태조사를 통한 우수한 한국 침구치료기술을 발굴하고
▲그 효능 검증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며
▲임상시험을 통해 침구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평가 연구를 하며
▲치료기전규명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최선미 의료연구부장은 “한의학의 발전은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규정하며 침구학을 한의학 치료의 으뜸으로 간주했다.
“한의학의 치료는 첫 번째가 침이고 두 번째가 뜸이며, 다음이 약이다."
"침구치료는 경락의 경혈을 자극하여 치료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한의사와 침·뜸만 있으면 되는 경제적인 치료방법이다. 임상효능에 대한 검증과 기전 규명 연구가 뒷받침되어 경혈 자극에 과학적 데이터가 축적돼야 한다. 침구학의 발전을 통해 한의학의 진단·치료분야는 획기적으로 현대화할 수 있다.”
대전대 한의학과 홍권의 교수(침구학)는 “한의학에서 침술은 저비용 고효율, 부작용이 없다는 점에서 한의학 고유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분야”로 규정했다.
홍 교수는 그러나 “한국에서의 광범위한 침술 보급에도 불구하고 침구학의 논문이나 새로운 연구 성과는 미국, 유럽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침술에서의 연구 성과가 미흡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침구학의 트렌드가 중국의 ‘변증요법’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증요법’이란 예컨대 ‘어떤 혈에 침을 놓으면 요통이 사라진다’는 식의 치료술이다.
요통의 다양한 원인에 대한 고찰보다 혈의 위치와 병증의 관계를 파고드는 침술이라는 얘기다. 홍 교수는 연구 성과의 풍성함이 치료술 자체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구 사회, 특히 미국 쪽에서는 침술을 아직도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한의사 전원이 침술을 연구하고 직접 진료에 활용하지만 미국의 경우 연구자와 침구사는 엄격히 분리돼 존재한다. 일상적으로 침을 활용해 우수한 임상 실적을 거두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침구술이 탁월하다.”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 중국의 중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이 세계시장에서 동양의학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중국인은 우선 중의와 중약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생각한다.
국민보건에도 중요하고 산업적 차원에서도 잠재력이 엄청난 분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50년대부터 중의학의 발전을 위해 서양의학과 동일한 정도의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연구열도 대단히 뜨겁다.
한·중수교 직후인 1992년 9월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 학부과정을 졸업한 뒤 석·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인근(金仁根·44) 박사.
그는 중의사면허시험(中醫職業醫師資格考査)에도 합격해 중의사 자격을 딴 중국유학 1세대다. 그는 중국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마치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었다. 오전수업 4시간, 오후수업 4시간으로 한마디로 강행군이다. 명색이 대학이라지만 한국의 대학에서 흔한 축제도 없다. 교수가 강의를 하는데, 첫 시간에 들어오자마자 교과서 진도를 나간다. 어떤 교수는 자기 이름 소개도 안 하고 진도부터 나간다. 그래서 한 번은 첫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 성함이 뭡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냥 칠판에 이름만 쓰고 나갔다. 물론 수업시간에 농담도 거의 없다.”
중국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이렇게 타이트한 이유는 가혹한 평가제도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학생이 교수를 평가하는 제도가 있다.
예컨대 어떤 교수가 상을 당해 이틀 간 결강했다면 결강한 수업을 반드시 보충해야 한다. 학생이 학교측에 투서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므로 학교 안에서 수업하고 먹고 자고 다시 수업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동양의학 대표브랜드는 중의학
중의약대를 졸업한 한국유학생에 대해 한국 내에서 한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귀국해도 배운 것을 활용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대개 제약회사에 취업한다든가 경동시장에서 일을 한다.
아예 전업한 유학생도 많다. 중국어학원 강사나 무역업 등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한국 한의학계의 폐쇄성을 이렇게 질타한다.
“실력 면에서 볼 때 유학생 출신이 국내 한의과대학을 나온 사람과 겨루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다만 국내에서는 한의대 입학하기가 무척 어려우니 중국유학은 쉽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똑같은 자격을 주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이다. 결국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한의업계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
2000년 이후 한의사의 숫자가 이미 포화상태라는 지적이 업계 내부에서 일고 있다.
현재 1만6000명 정도의 한의사가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년 800명 가량의 졸업생이 배출되며 이들의 99% 이상이 한의사 면허를 취득한다.
중의학을 전공해도 15% 정도만 합격하는 중국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다.
업계에서는 외국에서 3000명 정도의 한의사만 몰려와도 한의학계는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 한의대는 커리큘럼만으로는 학생들의 연구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침구학의 경우에서도 교수진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수의 한의대생이 방과 후 유명 한의사를 찾아가 침술을 배우거나 원전을 공부한다. 방학이 되면 한 달씩 동아리를 조직해 ‘동의보감’을 공부하고, 학교 게시판을 통해 모인 일행과 함께 합숙 스터디 MT를 떠나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1950년대 이후 전통의학 자원 확보와 중약사업 관리를 강화시키는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구체적인 정책 실천으로 중의의 의료서비스 체계를 정비하고 중약을 현대화하는 노력을 지속했다.
중의학이 세계 전통의학계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중의약 교육을 개혁하고 과학기술을 도입한 연구발전에 투자하고, 대외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한국한의학연구소 최선미 의료연구부장은 중국 중의학의 현 단계를 이렇게 진단했다.
“중의학계는 중의학의 이론을 보급하기 위해 이론서의 영역화를 시도했다.
민간 차원의 학술교류와 정부 대 정부의 협약 강화로 중의 이론서가 세계 각국의 교육기관에 제공된 것이다.
수많은 중의 의료 인력이 세계 의료시장 현장에 진출하였으며, 각국의 의료인이 중국에 유학와서 중의학을 교육받을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개혁했다.
중국의 침구학은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타임스 기자인 제임스 레스턴이 수술 후 복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중국 의사들이 침을 사용하는 것을 기사화했다.
이 기사가 회자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중의학 연구 붐을 일으켰고 많은 세계 의료인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동양 전통의학의 기술을 보급받게 됐다.”
한국 한의학의 세계화는 아직 요원하다.
우리 한의학의 국가경쟁력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갈 길이 매우 멀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의학의 경쟁력이 ‘근거 중심 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 EBM)으로서의 토대를 충분히 확보했는가의 여부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거 중심 의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 성과가 축적돼야 하는데 국가의 정책적인 투자는 아직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한의학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여전히 기본적으로 학문이 유지될 수 있는 정도의 투자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수준이다.
한의학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고 의료기술 향상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한의학의 세계화는 그 시기를 앞당기기 어렵다.
한중일 3국 침놓는 자리도 달라
근거 중심 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전통과 현대의 과학기술을 결합해야 한다.
한의학의 진단·치료 기술의 표준화와 과학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WHO(세계보건기구) 전통의학 자문관으로 임명된 최승훈 교수(경희대 한의대)가 이 분야에 독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 교수는 한의학의 전통 침술이 신경계통과 통증질환 치료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전통의학을 활용하는 국가 간 상호교류가 적어 세계화에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의학 용어의 한자 및 영어표기 통일과 학술용어의 표준화 작업에 착수했다.
“한방의 핵심분야인 침구혈만 놓고 보더라도 한·중·일 3국이 침을 놓는 자리가 다르다. 용어 통일과 함께 각종 진단과 처방에 대한 표준 제정작업이 절실하다.”
작년 11월 일본 쓰쿠바 시에서 열린 ‘경혈부위 국제표준화 공식회의’에서 이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회의에 참석한 3개국 대표들은 침구학의 고전으로 서기 3세기에 편찬된 중국의 ‘침구갑을경(鍼灸甲乙經)’ 등을 참고로 표준화 작업에 착수, 3년 간 격론을 벌인 끝에 기본적인 합의를 이루고 경혈의 국제표준화를 정식 채택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한·미 FTA 협상에서 불거진 한의사 시장개방 논의를 계기로 한방의 과학화·세계화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2002년 1000억 달러에 불과했던 세계 대체의학 시장이 내년에 2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올해 한방치료기술 예산으로 80억 원을 지원하는 등 오는 2010년까지 한의학 연구개발(R&D) 등에 1471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 39억 원을 들여 공공의료기관에 한방진료부를 설치하는 한편, 뇌혈관 질환(중풍·치매) 등 만성 난치성 질환 치료에 한의학 이론을 적용 연구하는 기관에 30억 원의 출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향후 한·중 FTA로 중의학이 한국시장에 진출할 경우에 대비해 한의학 경쟁력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보고 내년 개교 예정인 국립한의학전문대학원(부산대)의 조기 활성화 방안을 찾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 정책만으로 한의업계의 위기가 타파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갈수록 뛰어난 인재들이 한의사를 지망하고 있지만 정작 순수학문으로서의 한의학 연구에 대한 열정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경희대 최승훈 교수는 “후배들의 한의학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이 중요하다. 한의사가 된 후 단 열매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연구에 전념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외부의 위협을 문제삼기 이전에 내부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한기홍 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2.동의보감에 의해 침구술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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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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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들어와 의술로 체계화… 1962년 국민의료법 개정 때 침구사 규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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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침구 관련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 여성 환자가 침을 맞고 있다. |
기원전 3000년께 시작됐다는 침구술(鍼灸術)이 한반도에 개화한 것은 고구려 시대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또 일부 역사서 등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의술로서 체계화된 것은 조선시대인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세종은 1438년 침뜸전문생을 매년 3명씩 선발해 전의감과 혜민국, 제생원 등 삼의사에 한 명씩 배속시킨 것으로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내부병원’에도 침의 배치
하지만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침구전문의 제도가 완성된 것은 성종에 이르러서다. 성종은 1472년 의학권장 10조를 정하면서 침구 전문의를 설치했다. 또 성종 16년(1485년)에 완성된 조선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에는 의과취재에 침구 분야와 약제 분야를 분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침과 약제에 대한 구분을 분명히 해 전문적인 의술로 체계화시킨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명의인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과 허임이 지은 ‘침구경험방’에 의해 침구술에 대한 이론이 집대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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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이용한 벌침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경향신문> |
19세기말 들어서도 이 같은 침뜸과 약제의 전문화는 계속되었다. 1889년 설립된 ‘내부병원’의 직원 중에 ‘침의’(鍼醫)를 배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1890년 내부병원의 관제를 변경할 때도 광제원에 대방의 3명, 침의 1명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식민지하에서도 침구술은 비교적 활발했다.
특히 일본에서 건너온 ‘침뜸의사’가 늘면서 이를 제도화하기에 이른다.
1914년 10월 조선총독부는 안마술과 함께 침술사의 자격에 대한 규정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또 탕액을 중심으로 한방의료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당시 ‘의생’이라고 불렸다.
1913년 의생규칙이 발표된 후 1년 만에 이들에게 의생면허증을 발급했다.
1944년에는 안마술, 침술, 구술영업자에서 침사(鍼士), 구사(灸士), 안마사(按摩士)로 명칭을 고쳤다가 해방 후 1951년에 마련된 국민의료법에는 침사와 구사를 의료유사업자로 규정했다.
한편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 등은 의료업자로 규정했다.
1960년 4·19 이후에는 ‘의료유사업자령’과 ‘침구사자격시험규정’을 제정했지만 결국 자격시험은 실시되지 않았다.
1962년 국민의료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의료유사사업자에 관한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침구의사제도 부활 전통 계승해야”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침구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현재 80여 명뿐이다.
이마저도 대부분은 80대, 90대 나이의 고령이어서 지금은 50여 명 정도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밖에 3만여 명의 무면허 침구사들이 자격증 제도의 부활을 꿈꾸며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대한침구사협회 김상배 사무총장(74)은 “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가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침구 전문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면서 “침구술을 전문으로 하는 ‘침구의사제도’를 부활해 전통문화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침구는 적은 비용으로 환자를 치유할 수 있다는 장점과 부작용이 거의 없어 생활의학이 될 수 있다”면서 “침구의사의 명맥이 끊기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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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다이어트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경향신문> |
한국전통의학연구소 임성무 연구실장(67)은 “침구술에 대한 놀라운 효과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왔다”면서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침구술을 배워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생활의학의 사례를 일본의 침구사제도를 통해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일본의 경우 손목이 삐거나 어깨가 결리는 등의 치료에는 침구술이 동원된다”면서 “노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일본은 침구술의 천국”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한의사 제도가 없다.
대신 침구술이 발달되어 있어 침술은 대부분 침구사가 활용하고 있다.
일본이 침구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는 침구사 국가시험 주관기관인 ‘동양요법시험연수재단’의 설립취지문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설립취지문에서는 ‘고령화 대책을 동양요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일본에서 동양요법은 침과 뜸 그리고 안마, 마사지, 지압 등을 말한다.
현재 일본에는 3년 이상 과정의 침구 전문가 양성 기관이 130여 개에(2003년 현재)에 달하고 침구전문대학은 2001년 38개 학교에서 2003년에는 60여 개로 크게 늘었다.
특히 일본은 ‘침구의 활용분야가 21세기에는 한층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 침구치료의 확대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침구치료 분야도 신경운동기계과를 비롯해 산부인과, 정신보건, 노인보건, 산업보건에 이르기 까지 크게 확대하고 있다.
북한 주체의학 확립에 큰 관심
한국, 일본과 함께 동양침구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도 정부차원에서 침구술에 적잖은 관심을 쏟고 있다.
1972년 2월 ‘죽의 장막’을 허물게 했던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도 중국 침술이 한몫한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침술’은 중국 의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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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학의 필수품인 각종 침. | ‘침구술’에 대한 관심은 북한도 크다. 풍족하지 않은 의료시설을 침구술로 다스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해방직후 전통의학(동의학)을 이론적 체계를 정립해 주체의학 확립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북한은 ‘국립동의학과학원’이라는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전통의학 연구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국립동의학과학원’에는 5개의 연구소(동의학기초이론연구소, 전통약학연구소, 침구연구소, 전통동의내과연구소, 전통의학외과연구소)와 8개의 연구실(민속의학연구실, 고전자료연구실, 진단연구실, 의료기기연구실, 생약연구실, 한약연구실, 전통의학치료연구실, 비약물치료연구실)이 있다.
북한의 보건의료수준은 질적인 측면에서 우리와 비교해 대체로 뒤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의학의 경우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북한은 일제의 한의학 말살정책 속에 겨우 살아남은 전래 민간요법과 동의학을 해방 직후부터 이론적으로 체계화해 실제 각종 질병의 치료에 이용해 오고 있다.
북한은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동의학을 상당 수준까지 발전시켰으며 이를 치료 및 예방사업에 널리 활용하고 있다. 북한의 이 같은 정책 및 민간요법의 육성은 현대 의료기술 수준과 신의약품 부족에 따른 의료서비스 곤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서양의 침구사제도
서양에는 고대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한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 침구술 등 동양의학의 기술과 비법이 비교적 많이 전해졌다. 특히 산업혁명 등을 거친 16세기 이후부터는 동양의 침구학이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프랑스는 침구의학이 가장 많이 수용된 나라이다. 침술 치료의 경우 프랑스 국민의 50%가 침치료를 받아본 경험을 갖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과열돼 우려가 일 정도이다.
독일도 침구술에 큰 관심을 갖는 나라 중 하나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와 달리 의사와 함께 간호사도 침시술을 할 수 있고 보험도 가능하다. 의사의 감독 아래 조산원이나 간호사가 침술을 행하는 곳도 있다. 독일 전체로 볼 때 침술을 하는 의사는 매우 적은 편이지만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큰 병원의 약 30% 정도에서 침술이 행해지고 있다.
영국도 지압, 천연약초물리치료 등과 함께 침구술에 큰 호감을 갖고 있다. 영국은 면허를 갖고 있는 의사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어 침치료 역시 의사의 책임하에만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사설기관으로 영국침협회가 설립되어 있고 침구학원도 있어 침술 보급과 연구가 점차 활발해져 가고 있다.
런던에 있는 전통침구학원 같은 곳에서는 침구의학의 기초이론부터 시작해 3년간에 걸쳐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시험을 거쳐 침사자격을 부여받고 단독으로 개업할 수도 있다.
러시아에는 동양의학이 일찍부터 유럽을 통해 전파되었다. 전파된 동양의 의료술은 각 지역과 부족들의 토속 의술로 발전됐고 현재도 민간요법으로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1951년에는 구 소련의 의사단 17명이 중국에 파견되어 6년간 연수를 받기도 했다. 특히 우주비행사들의 보건훈련 과정에도 침술이 포함되어 비행사들이 우주공간에서 생리기능을 조절하는 데 큰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제공=대한침구사협회〉 |
침구술의 정의와 침의 종류
‘침구술’은 침과 뜸(灸)으로 인체의 경혈(經穴)에 자극을 줘 생체기능의 변조를 바로잡고 건강증진이나 질병치료를 하는 동양의술의 하나이다. 동양의학에서 물리요법의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는 침구술에 대해 그동안 의료계는 과학적 실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황제내경’에 따르면 원래 침 종류는 참침을 비롯해 원침·시침·봉침·피침·원리침·호침·장침·대침 등 9종류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이들 중 현재 주로 쓰이고 있는 것은 호침이다. 또 피부를 압박하거나 찰과(擦過)할 목적으로 쓰는 원침이나 시침이 소아침으로 쓰이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혈에 침을 제대로 놓을 경우 통증을 거의 못 느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큰 통증을 느낀다. 또 침은 놓은 부위에 따라 족침(足鍼,) 수지침(手指鍼), 두침(頭鍼), 이침(耳鍼) 등으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전통 방식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침술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약침’(藥鍼)이다. 약물을 넣은 침으로 생김새나 치료방법이 주사와 비슷하다. 이밖에 아로마 오일을 침에 입힌 ‘향침’(香鍼)과 전류를 흘려 자극을 주는 ‘전침’(電鍼)도 있다. |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3 “침 원리는 병의 원인을 공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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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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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기른 원장님’의 일침철학 “한의사 의지가 침에 전달될 때 치료효과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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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호일침학회 김광호 원장은 한의사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같은 모습이다. 그는 실제로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독립운동하듯 전국은 물론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이니셜을 딴 ‘KKH 취혈법’이란 독특한 침술을 개발하고 ‘동의보감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광호 원장은 그 동안은 ‘신묘한 침술을 가진 괴짜 의사’로만 여겼지만 요즘은 한국 한의학의 미래를 좌우하는 주요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동의보감에 빠져 ‘침술 세계’ 재발견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요즘 세상, 보약만 팔아도 평화롭고 따뜻하게 살 수 있는데 400여 년 전의 헌(?) 책인 동의보감을 떠받들며 침술로 대한민국 의술의 국제화를 부르짖는 이유가 뭘까. 게다가 기상이변까지 가져올 만큼 환경 변화가 극심하고 아토피를 비롯 과거엔 듣도 보도 못한 질병도 많이 나타났고 평균 신장은 물론 체형과 체질도 달라졌는데 21세기의 환경에서 과연 침술로 모든 질병의 치료가 가능할까.
“굳이 과거와 비교할 것도 없이 현재 미국, 유럽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만 비교해도 체질과 체형은 다릅니다. 하지만 제가 20여 개국 이상의 국민들을 치료해봤는데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감기약이 미국인에게는 듣고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효용이 없는 게 아닌 것처럼 근본원인을 찾아내면 치료방법도 같습니다. 과거와 환경은 다소 달라졌겠지만 인간의 감정을 좌우하는 사단칠정(四端七情)도 그대로이고, 우리 인체는 오장육부(五臟六腑)와 12경락을 바탕으로 병이 진행되기 때문에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서 아픈 쪽의 반대쪽에 침을 놓고 약을 병행하면 대부분 낫더군요. 저는 ‘일침(一鍼) 이구(二灸) 삼약(三藥)’ 즉 침술이 첫째요, 뜸술이 두 번째, 한약이 세 번째 치료법이란 뜻의 한방 성구(聖句)에 동의합니다.”
김광호 원장이 이토록 침과 동의보감을 종교처럼 숭앙하는 이유는 자신의 체험 때문이다. 경희대 한의대 예과 2학년 시절에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간경화 말기환자인 지인이 복수가 가득 차서 그를 찾아왔다. 마지막 호소를 하는 그를 위해 동의보감을 뒤지다가 책에 나와 있는 그대로 처방을 했더니 복수가 빠지는 등 증세가 눈에 띄게 호전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었지만 겉모습은 한의여도 속은 양의사인 어정쩡한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다가 본격적으로 동의보감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맹렬하게 파고들면서 침술의 세계와 효과를 재발견했다.
그는 무릎 관절이 아파 쪼그려 앉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엄지발가락 끝에 평범하게 생긴 침 한 대를 찌르는 것만으로 바로 걷거나 앉게 하는 침술을 구사하며 명의로 입소문이 났다. 화살을 쏠 때 10점짜리 과녁을 맞추듯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경혈(經穴)을 정확히 찾으면 한두 대의 침으로 통증 없이 치료효과를 순식간에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일침철학이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기감이 뛰어난 이들이 신묘한 한의사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오랜 임상경험을 갖춘 숙련의들이 더 나을까.
“기감도 중요하지만 경혈 자리를 제대로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점짜리 경혈 자리를 찾으려면 첫째는 손끝의 느낌. 흐르는 물이 고여 있는 곳, 기(氣)가 솟거나 빨아들이는 곳,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지만 실제 침을 놓으면 아프지 않은 곳을 가운데 손가락 손톱 아래 부위로 살며시 문지르며 찾아야 합니다. 침의 치료원리는 증치(症治)가 아닌 근치(根治), 즉 증상이 아닌 원인을 찾아 공략하는 것입니다. 퇴행성 관절염을 예로 들자면 퇴행성 관절질환은 뼈의 어긋남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죠. 하지만 이는 단지 증상일 뿐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뼈의 뒤틀림은 관절을 둘러싼 근육의 평형이 깨져 나타난 것이며, 근육의 불균형은 다시 오장육부 기혈(氣血)의 허실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정확한 경혈 자리를 찾아내 침을 놓으면 파킨슨씨병도 침과 약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한의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의보감을 성경 읽듯 다시 한 자 한 자 독파하기 시작한 그는 황제내경, 침구대성과 같은 한방고전을 100회 이상 완독하면서 자연스럽게 물리를 터득하게 됐다고 한다. 그후 200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8차 국제동양의학 학술대회’ 등에서 100일 간 미국 한의사 280명을 대상으로 ‘호일침’ 요법에 대해 강의를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
“당시 서양의학에 환멸을 느낀 미국인들이 대체의학에서 해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이 때문에 동양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침은 물론 뜸, 경락마사지 등에 대해 주요 매스컴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더군요. 그때 한국의 한의학도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분원 개원, 일본엔 2곳 예정
학술대회가 끝난 후 귀국한 그는 미국시장 공략을 위한 ‘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일단 2003년 대구에 처음으로 ‘호일침한의원’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에는 삼성·교대·목동, 부산에는 롯데호텔·연산동·해운대, 경상도에는 대구·포항·창원롯데·울산, 전남에는 광주·여수에 지점을 두고 있다. 200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분원을 열었다. 2007년 봄에는 일본 오사카와 히로시마에 동시에 두 개의 분원이 개원한다.
한의학의 메카로 알려진 중국에서도 그는 제 실력을 발휘했다. 지난 10월 ‘텐진 국제중의학 학술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을 때 세계 42개국에서 온 의학자 200여 명이 갈채를 보냈고 텐진중의대 총장의 요청으로 중의사, 교수, 대학원생 등 50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환자에게 침술 시연도 하면서 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그의 침을 맞은 고관이 효과를 보자 이스베스차지 등 유력지에 소개되었고 발레단 단원들이 그에게 침을 맞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 유방암 증세가 있는 여자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 한 번 시술로 차도를 보이자 “완치될 때까지 러시아에 머물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환자가 하필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아내여서 거절하는 데도 몹시 힘들었단다. 중의사들조차 인정해주고 전 세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침술이 정작 한국에서는 여전히 푸대접을 받고 있어서 김광호 원장은 속이 상한다고 했다.
“아직도 침을 맞거나 한약을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한의학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은 뜸은 보하고 침은 사한다는 식의 어쭙잖은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양의 4명 중 1명이 침을 놓고 미국 군의관 진급심사시에는 침을 놓을 줄 알면 가산점을 줄 만큼 세계적으로 침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바로 잡아지겠지만 우리 한의사들부터 침은 물론 한의학을 제대로 공부해야 합니다.”
김광호 원장은 침만 공부해서는 좋은 한의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한의학, 사상, 그리고 인생의 공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환자를 확실히 치료하겠다는 마음이 침에 전달될 때 치료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과거엔 침 놓는 법 등 기술 위주의 침을 지도했지만 이젠 마음의 폭을 넓히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김 원장에게 침은 학문이며 인생이고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이면서 동시에 신앙이기도 하다.
“신앙인들이 불교과 기독교 교리를 확신을 갖고 무조건 믿으면 신앙심도 커지고 기도의 힘도 느끼지요. 하지만 ‘예수가 진짜 있었는지 증거를 내놔라’ 하는 것처럼 침도 즉각적 효과를 과학적 데이터로 내놔라 등의 요구만 하면 침을 놓는 실력은 물론 치료효과도 적습니다. 동의보감에 기초한 호일침 요법으로 너무 많은 환자들이 낫는 것을 보았기에 저는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어요.”
몇 년마다 산속으로 들어가 공부
침으로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다. 김 원장과 호일침학회의 실력이 소문나면서 그만큼 중병을 앓는 환자가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한의원 문을 닫고 6개월 가량 산 속에서 책을 보기도 했다. 특히 동의보감을 주로 분석한다. 우리 한의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철저히 우리 것을 분석해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긴 수염도 4년 전 대구 서당에서 공부에 몰두하다 면도할 시간이 없어 기르게 된 것. 마침 그 무렵에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걸 본 시청자들이 ‘수염 기른 원장님’을 찾아서 할 수 없이 기르게 되었단다. 김 원장의 수염 기른 모습이 멋있어 보였는지 호일침학회 사무총장은 물론 일분 침구사회 회장과 수석간부 역시 수염을 길러 ‘호일침학회에서 성공하려면 수염을 길러야 한다’는 새로운 징크스를 만들어냈다.
그 근사한 모습으로 품위 있게(?) 보약만 팔아도 편히 살 텐데 왜 회원들과 밤잠도 안 자고 공부를 하며 마치 개척이나 하듯 외국에 가서 한방병원을 열려고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사람은 부나 명예만이 아니라 ‘꿈’이 있어야 합니다. 수백 억 재산을 갖고 병원 특실에서 돈을 펑펑 쓰며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죠. 어떤 부자 중병환자의 경우 가족들이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치료를 굳이 하기 싫다’며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도 봤습니다. 제가 한 달에 1억을 번다면 처음 몇 달은 행복할지 몰라도 다시 1억5000만 원을 벌어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꿈을 갖고 실현해가는 과정이지요. 저는 우리 침술과 한의학이 태권도처럼 전 세계에 퍼져 나가고 종주국이 되어서 성지순례하듯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오게 하는 것이 꿈입니다. 장충체육관이나 잠실운동장에 각 나라에서 참가한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 국기나 깃발을 들고 ‘호일침학회 세계학술대회’에 참가해 한국 한의학과 침술에 존경심을 표현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지난해 일본에 의료봉사활동을 갔을 때 통역을 맡았던 재일교포가 ‘일본인이 한국 사람에 대해 정말 마음깊이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면서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눈물을 글썽일 때 김광호 원장은 그의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았단다. 꿈이 있어서, 그 꿈을 자신과 동료들의 손으로 이뤄낼 날이 가까워서 김광호 원장은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마냥 행복하단다.
<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
4 침술 요법으로 건강 되찾은 임상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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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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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만나 몸이 편안해졌어요”
요통 박성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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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후 아버지와 함께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박성범군(오른쪽). | 흔히 한의사가 놓는 침은 근육이 뭉쳤거나 발목이 삐끗했을 때만 효과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침의 위력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제 임상에서 침은 요통, 고관절통, 슬통(무릎통증)은 물론 오장육부의 문제, 분노나 슬픔 등 감정적 문제도 치료한다. 심지어 암환자도 침의 도움을 받는다. 침을 통해 건강과 웃음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엉덩이 통증 줄어 일상생활 가능박성범군(18)은 지난 2005년 갑자기 허리 아래 엉덩이 부위에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어도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6년 12월 다시 통증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재발했다.
앉아 있는 시간이 10분 정도 지나면 통증이 극심해져 더 이상 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고 무거운 느낌도 들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 통증이 가장 심했다.
엉덩관절이라고도 하는 고관절까지 연결된 엉덩이 통증은 올 1월에는 무릎 아래쪽으로도 진행됐다. 다리를 조금 올리는 동작만으로도 통증이 느껴졌다. 박군은 “병이 점점 진행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 1월 척추전문병원에서 디스크 진단을 받고 수술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박군의 부모는 박군이 아직 어린 나이라 가능하면 수술만큼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한의원을 찾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예진할 때 박군은 “평소 갈증이 심해서 물 마실 때 두 컵 정도를 한꺼번에 차가운 상태로 마시고 겨울이면 입이 잘 건조해진다”고 말했다. 또 “평소 화나 짜증을 잘 내고 한숨을 잘 쉬며, 잘 놀래는 편이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박군은 “오른쪽 귀에서 ‘쿵’하는 이명이 일정하게 나는 편이고 평소에 등 쪽에서 땀이 잘 나며 최근에는 하체 쪽에서도 땀이 난다”고 말했다. 오전에도 피곤함을 느끼며 배가 더부룩하고 식후에 트림을 자주 하며 속이 쓰린 증상도 있었다. 감기에 걸리면 항상 열이 난다고 했다.
올 1월 박군에 대한 첫 진료를 할 때 누운 자세에서 허리를 들어보라고 하니 통증 때문에 허리를 들고 유지하지를 못했다. 다리들기(SLR 테스트)를 해보니 침대에서 30cm만 들어도 엉덩이 부위에 통증이 생겼다.
한의사가 오른쪽 팔과 다리에 침을 놓자 다리들기 테스트에서는 거의 불편을 모를 정도로 많이 호전됐다. 그러나 사흘 후 통증이 다시 재발했다. 재차 오른쪽 팔과 다리에 침을 놓는 처치를 하자 엉덩이 부위 통증이 세 번째 진료일까지 40% 가까이 감소되었고 아픈 정도도 더 이상 심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치료 전에는 10분만 앉아 있어도 통증이 심해지던 것이 네 번 정도 치료를 받은 뒤부터는 2시간 정도 않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6회의 침치료를 진행했고 한약을 처방했다.
디스크로 인해 무릎 아래로 바깥쪽이 아픈 느낌도 엉덩이 통증과 같이 호전되기 시작해 현재는 통증이 20%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많이 좋아졌다. 박군은 “누워 있다 일어날 때 한 번만 통증이 있고 평상시의 활동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아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박군은 다른 일반적인 디스크환자와는 달리 허리에 외부적인 손상이나 무리한 운동이나 퇴행으로 인한 관절염 없이 디스크가 발생한 경우이다. 순전히 내부 오장의 질병으로 인해서 요통이 발생한 것이다. 그 요통이 양방적인 진단에서 디스크로 판별될 정도의 질환이 된 것이다.
요통은 신장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신장병은 동의보감에서 기어동(起於冬)이라고 하여 겨울에 생기는 병이다. 2006년 12월 특별한 이유 없이 박군에게 통증이 발생한 것은 2005년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방적으로 장부가 계절상의 성쇠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암 크기와 수치 많이 줄어
췌장암 말기 환자 백종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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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의원을 찾았다가 병세가 호전된 백종현씨. | 췌장암 말기 환자 백종현씨는 한의원을 매일 간다. 처음 한의원을 찾아갔을 때의 백씨는 병색이 완연했다. 가족의 요청으로 백씨는 췌장암 말기가 아닌 초기로 알고 있긴 했지만 이미 정상 체중에서 10㎏ 넘게 빠지고, 소화를 시키지 못해 유동식으로만 식사를 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첫날 침을 맞고난 백씨는 평소 절반도 못 먹던 홍삼엑기스 한 포를 거뜬히 먹을 수 있었다.
진료 7개월째인 요즘 백씨는 체중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으며 원래 식사량의 80~90%정도를 먹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백씨는 한의원을 방문하기 전 양방에서 항암치료(약물)를 계속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고통이나 불편함이 컸다. 반면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은 양방의 항암치료를 받을 때에 비해 고통이나 불편함이 20~30%로 줄어 약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정도로만 느끼는 상태이다. 지금은 항암치료를 중단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또 얼마 전 검사에서는 암 크기와 수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백씨의 며느리는 “처음에는 병원에서 한 달밖에 못 사실 거라는 얘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었다”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암의 정복은 양방이건 한방이건 불문하고 현대 의사들이 공히 느끼는 화두다. 양방에서는 주로 외과적 수술 방법과 암을 축소시키는 항암제를 사용하여 치료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과정중에 암 환자의 생활의 질이 크게 나빠지기도 한다.
동의보감에 ‘양정적자제(養正積自除: 인체의 정기를 기르면 적취, 즉 한방에서 보는 암이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 라는 문구가 있다.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방법이 아니라 인체의 정기를 길러서 암을 치료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서양의학의 항암치료 중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인체의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암세포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건강한 세포들까지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적취(積聚: 한방에서 형태를 이루는 덩어리를 일컫는 말) 덩어리인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정기를 길러주기 때문에 인체의 기능이 나아지면서 컨디션도 덩달아 좋아지게 된다.
참기 힘든 극심한 동통이나 불편했던 증상들이 없어지면서 일상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암 환자 중에는 항암치료와 같이 한방치료를 받으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 한의원을 방문하기도 한다.
중국 천진중의약대학의 부속병원에 따르면 암 환자나 신부전 환자들의 경우도 한약을 같이 병행해 치료하는 것이 월등히 효과가 좋다고 한다. 이들은 수술 전이나 후에 환자의 정기를 보(補)해주기 위해 한약을 복약하는 치료를 하고 있으며 지금도 임상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원인 치료로 전체적 몸상태 향상
무릎통증 설점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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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절뚝거리지 않고 걷게 됐다는 설점이씨가 침을 맞고 있다. | 올해 61세인 설점이씨는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한의원을 찾았다. 지난 10여 년 간 10월만 되면 무릎 통증이 심해지고 봄이 되면 다시 괜찮아지기를 반복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나아지겠거니 생각하며 별 다른 치료를 받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2006년 10월께부터는 지금까지 통증이 지속적으로 계속됐다. 가만히 있어도 무릎이 따끔거리고 쑤시며, 붇고 열이 나기도 했으며,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도 통증이 있었다. 때론 통증이 심해 절뚝거릴 정도였다. 아프긴 했지만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얼마 전 길에서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의사는 X-ray 결과로 보아 관절이 다른 사람에 비해 원래 약하므로 계단을 조심해야 하고 운동이나 등산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또 치료를 계속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정씨는 약을 챙겨 먹거나, 뼈주사를 맞거나 하는 게 싫어 두 번 다시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씨의 둘째 딸이 한의원에서 침으로 치료하면 어떻겠냐고 해 딸과 함께 한의원을 방문하게 됐다. 처음 한의원을 방문하던 날 한의사는 몸 상태에 대해 1시간 가량 상담을 한 후 침을 맞자고 했다. 통증이 오는 무릎을 체크해 보는 것은 물론 배를 비롯해 여기저기 눌러보며 통증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질문 뒤엔 침을 놓았고 그러고 나서는 신기할 정도로 무릎과 배가 편해진 느낌이었다. 정씨는 ‘이렇게 하면 금새 낫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한의사는 “병세가 세다면 침 맞은 뒤 편한 상태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병세가 약하다면 좋은 느낌이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전자였다. 침을 맞고 좋은 상태가 하루밖에 유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치료를 시작한 10일 정도는 무릎이 더 많이 붓고, 통증도 심해졌다. 처음에 아픈 정도를 10으로 치면 15 정도로 통증이 왔다. 담당 한의사는 치료과정이라며 정씨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열흘이 지난 뒤부터는 무릎이 편해지는 시간이 늘어났고, 붓는 정도나 통증의 세기도 훨씬 줄어들었다.
정씨는 “한의원에서 치료를 3개월 간 받으면서 가장 기뻤던 일은 몸의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라고 말했다. 담당 한의사는 “무릎이 아픈 원인은 신장기능이 좋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장치료를 받으니 무릎이 좋아지면서 소변을 못 참는 증상도 좋아지고 소화도 잘되어 속이 편해졌다. 바지를 입으면 갑갑하던 느낌도 사라졌다. 또 두통이 올 때마다 뇌선이라는 약을 자주 복용하곤 했는데 두통이 줄어들어 그 약을 먹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얼굴로 열이 올라오며 땀이 나는 것도 없어졌고 피로감도 확실히 줄었다.
정씨는 “이렇게 몸 상태가 좋아지니 내 기분도 좋지만, 우리 딸들도 엄마가 아프단 소리를 안 한다며 더 좋아한다”며 “남은 기간 열심히 치료를 받고 앞으로 관리도 잘해서 재발이 안 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릎·다리 통증 50% 이상 호전
고관절 통증 정운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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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침으로 효과를 본 정운진씨. | 정운진씨(69)는 스무 살에 결혼해 첫 아이를 출산한 후부터 골반과 허벅지 사이 부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고관절통’을 앓은 것이다. 그런데 한의원을 찾기 전까지 49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통증을 견디며 지냈다.
농삿일 할 때는 통증으로 고통을 참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또 허리 척추뼈에 해당하는 곳에 요통이 동반돼 담경락에 해당하는 엉덩이 부위와 무릎 아래 쪽 통증과 더불어 무릎통증도 심각한 상태였다. 급기야 무릎을 굽혀 완전히 앉기가 불가능했으며 걸을 때도 무릎통증으로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서 걸어야 했다.
검사 결과 고관절통은 물론이고 무릎의 퇴행성관절염과 허리디크스, 그리고 골다공증도 있었다. 하지만 몸이 쇠약한 상태라 수술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때문에 정씨는 진통 소염제 계통의 약물치료로만 통증을 약화시키며 근근이 몸을 지탱해 왔다.
한방치료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아시혈(아픈 혈자리에 침을 놓은 것) 위주의 대증요법과 진통 치료에만 그쳤다. 정씨는 그렇게 그때그때 심한 통증만 완화시키며 병을 호전시킬 기대는 갖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고관절통, 슬통(무릎통증), 요통(허리통증)으로 침대에 오르고 내릴 때도 동작을 천천히 해야 할 정도로 거동이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걸음도 빨리 걸을 수 없었으며 일어설 때도 손을 짚어야 할 정도로 불편해졌다.
다리들기(SLR 테스트)를 해본 결과, 정씨의 다리는 고작 38cm 정도 올라가는 상태였다. 다리 각도가 약 30도 정도 되었을 때 고관절과 무릎에 통증을 심하게 느꼈다. 무릎을 굽히고 펴는 동작에서도 굽힐 때 통증이 심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굽혀야 했으며 무릎을 펴는 동작 뿐만 아니라 무릎을 약간만 비트는 움직임에도 많이 불편해했다.
치료를 시작하며 간과 관련한 침을 놓자 정씨는 “무릎을 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침치료가 끝난 후에는 다리를 74cm까지 들어올리며 80도 가까이 고관절의 가동이 편해지는 것이 확인됐다. 이후 간침을 4회 정도 시행하면서 고관절의 통증이 10% 정도 줄어들었으며 SLR 테스트에서도 거의 정상적으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회 치료 이후 SLR 테스트에서는 80cm 이상을 움직일 수 있었으며 거동할 때에도 고관절의 통증이 크게 줄어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담침으로 바꾸어 치료를 계속했다. 2회 치료한 후 증상의 호전도를 체크해 보니 고관절 통증과 무릎바깥 쪽 통증이 50%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7회 정도 계속 치료한 결과 고관절 통증은 상당히 소실되어 SLR 테스트에서 고관절 통증을 더 이상 호소하지 않게 되었다. 무릎바깥 쪽 통증뿐만 아니라 엉덩이에서 다리 쪽으로 이어지던 통증도 50% 이상 호전되었다.
치료를 지속하면서 간 기능을 도와주는 한약을 같이 복용했다. 혈맥의 순환 기능이 좋아지면서 가만히 있어도 아프던 증상과 밤에 다리 통증이 심해지던 증상이 거의 없어졌다. 걸어 다닐 때와 앉고 설 때처럼 움직임이 많을 때만 통증이 일어나는 수준이 됐다. 이제 남은 치료는 무릎통증과 허리통증을 없애는 것이다. 담침으로 관절통증이 호전을 보이면서 무릎의 굽히고 펴는 게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지만 앉기 동작을 시켜보면 엉덩이를 치켜든 자세로 더 이상 앉지 못했으며 일어설 때도 양 무릎에 손을 짚고 일어서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릎관절의 완치를 위해서는 집중적으로 치료를 많이 해야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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