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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침뜸에 대한 조선사회의 관심
작성자 희상주의 (ip:)
  • 작성일 2007-06-07 11: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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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학의 대가 허임은 누구인가 -----침술針術

2005/07/16 22:20

http://blog.naver.com/mirinaebae/15094956

침구학의 대가 허임은 누구인가

조선조 17세기는 침구의학의 황금기였다. 당시 왕실의 빈번했던 침구치료와 조선 전역에서 배출된 여러 의가들의 활약이 그 증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당대의 명재상 유성룡(1542∼1607)이 ‘의학입문’이라는 명나라 의서의 경혈관련 부분을 정리하여 ‘침구요결(鍼灸要訣)’이라는 책을 저술한 것도 이 시기의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한 예다. 침구 방면에 있어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고조된 관심이 학문적 결실로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러 의가들이 활약한 중에서도 당시 침구학의 발전을 주도하고 빛나는 저술을 남겼던 두 사람의 의가가 있었으니, 허준(許浚)과 허임(許任)이 바로 그들이다. ‘허준’하면 ‘동의보감’으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름이지만, ‘허임’이란 이름은 낯설다. 모든 의학 영역에 두루 정통하였고 조선 전시대를 통해 가장 많은 의서를 저술했던 대학자 허준이지만, 적어도 침구분야만을 본다면 허임의 이름 또한 그에 뒤지지 않을 듯 싶다. 조선의 침구학을 말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의가가 바로 허임이다. 당시 세간에서 침구의가로서 허임의 명성은 매우 높은 것이었다. 그는 1644년에 조선 최초의 본격적인 침구전문서라 할 수 있는 ‘침구경험방’을 저술했다.

허임과 허준 두 사람은 조선침구학의 발전을 이끌어간 쌍두마차였고, 그들의 저술은 그 결정이었다. 이에 본 글은 17세기 조선에서 기록된 두 의서를 중심으로 당시 침구분야에서 논의된 제반 얘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즉 허임의 ‘침구경험방’을 한 축으로 하면서, 거기에 허준의 ‘동의보감’침구편을 보충하고, 침뜸의학에 대한 일부 개론적인 내용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한다.

장장 400년 전이라는 먼 시간을 거슬러 갖다 댄 이러한 조명을 통해 드러나는 조선땅의 침뜸역사는 어떤 것일까? 또한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되돌려 줄까? 이런 물음과 함께, 양 허씨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조선침구의 진경시대로 여행을 떠나보자.

 

침·뜸을 모르면 명의 아니다

   침뜸의학은 오랜 유래와 긴 발전과정을 거쳐왔다. 조선의 침뜸의학을 말하기 전에 간략하게나마 그 유래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일찍이 석기 시대에 돌조각, 즉 돌침(폄석)으로 우리 몸을 누르거나 찔러서 질병을 치료한 것을 침치료의 시초로 볼 수 있다. 또 뜸이라는 ‘구(灸)’ 자는 곧 ‘작(灼)’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뭇가지나 풀 등에 불을 붙이거나 뜨겁게 하여 병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나중에 쑥을 이용하게 되면서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함께 침구학술의 발전도 촉진되었는데, 1973년 중국 호남성 장사시 마왕퇴 3호 한묘에서 출토된 의학백서는 가장 오래된 경락학설의 초기면모를 보여준다.

전국시기 이후 한대에 걸쳐 형성된 동양의학 최고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황제내경’은 경락, 경혈, 침구방법 등에 대해 풍부한 내용을 싣고 있어 침구학술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경’이라고 간략히 부르기도 하는 이 책은 ‘소문’과 ‘영추’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영추’는 ‘침경’이라고도 한다. 약물요법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경’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는 치료방법은 약물이 아닌 침뜸요법이다.

이렇듯 오랜 역사 속에 침뜸의학의 발전은 결코 단선적일 수 없었다.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지역에서 여러 의가들의 다양한 이론과 경험이 얽히고 설키면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발전해왔다. 이러한 시대, 지역, 의가를 그 특징에 따라 몇몇 유파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1.침구경전 연구에 힘을 쏟았던 의가들 ∼경학파(經學派)
2.경혈을 연구하여 정리하는데 힘썼던 의가들 ∼경혈고증파(經穴考證派)
3.어떤 경혈을 선택해 치료할 것인가를 연구했던 이들 ∼혈법파(穴法派)
4.침을 놓는 기법을 연구했던 의가들 ∼수법파(手法派)
5.침을 찔러 피를 빼내주는 치료를 중시했던 이들 ∼자락방혈파(刺絡放血派)
6.뜸치료를 중시했던 의가들 ∼중구파(重灸派)
7.침치료에 치중했던 의가들 ∼중침파(重鍼派)
8.특정한 과의 질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했던 의가들 ∼임상각과제파(臨床各科諸派)
‘일침(一鍼), 이구(二灸), 삼약(三藥)’이라고들 한다. 어느 것의 우선을 따지기 이전에, 세 가지 치료수단이 있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침과 뜸 그리고 약물, 이 셋은 전통의학의 대표적인 치료수단이다.
일찍이 손사막(581∼682)은 ‘천금방’에서 이렇게 말한다.

“침뜸을 놓고 약물을 써야 한다. 약물만 쓰고 침을 쓰지 않으면 훌륭한 의사라고 할 수 없다. …침을 놓고 약물을 알아야지 진짜 훌륭한 의사다. 이것은 침뜸과 약물이 서로 돕는 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양계주(1522∼1620)라는 침구의 역시 ‘침구대성’ 중의 ‘제가득실책(諸家得失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병이 장위(腸胃)에 있으면 약물이 아니면 건질 수 없고, 병이 혈맥(血脈)에 있으면 침이 아니면 미칠 수가 없으며, 병이 주리(理)에 있으면 뜸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의사에게는 침과 뜸과 약물 어느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 많은 의사들이 병을 치료함에 단지 약물만 사용하고 침뜸은 버리고 있는데 그래서야 어떻게 환자의 원기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의가들의 주장은 침과 뜸과 약물은 각각의 적응증이 있으며, 의사는 마땅히 질병과 필요에 따라 모든 치료수단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침뜸에 대한 조선사회의 관심

   “…침뜸 처방은 돈을 들여가며 멀리서 구하는 수고를 안 해도 되며, …준비하기 쉽고 휴대하기도 편하며, 빈부귀천이나 병의 완급에 관계없이 적합지 않을 때가 없고, 하물며 효과에 있어서도 약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바가 있어 그 신묘함을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는 성종 때 중국침구서인 ‘신응경’을 간행하면서 한계희(1423∼1482)가 쓴 서문에 나오는 내용으로 침뜸치료의 간편성과 경제성, 그리고 치료효과의 우수성 등 침뜸의 장점을 잘 지적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침뜸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거의 환영을 받았다. 이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물론이요 국가나 관료들에게도 꼭 필요한 치료수단이었던 것이다.

조선도 초기인 태종 때부터 명에 가는 사신에게 ‘침구도’를 가져오게 할 정도로 침구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의학교육 때도 침구관련 과목은 필독서로 지정되었고, 여러 침구서적들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세종 때 간행된 ‘향약집성방’은 수혈 정리에 노력했고, 조선 최대의 의방서인 ‘의방유취’에서도 상당한 침구관련 서적을 인용하여 싣고 있다. 허준과 허임으로 이어지는 조선중기 침구학은 이러한 토양 속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물결은 조선후기로도 면면히 이어져 번침술로 유명한 이형익, 토착적이고 새로운 침법을 이끌었던 사암도인 등으로 발전해가게 된다.

아무튼 허임에 대해 ‘침구경험방’에 발문을 썼던 이경석(1595∼1671)이 한 말을 보자.
“신(神)의 기술을 가진 자로 평생 구하고 살린 것이 손으로 다 꼽을 수가 없다. 그간 죽은 사람도 살리는 등 효험을 많이 거두어 명성을 일세에 날렸으며 침가(鍼家)들이 추대하여 머리로 삼는다”

이는 허임에 대한 당시 세간의 평가를 잘 요약하고 있다. 허임의 생졸년은 대략 1570∼1647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실록에 따르면 그는 악공의 아들로 천민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태의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지방에서 침술로 이름이 높은 이들을 서울로 불러올려 왕실의 진료에 참여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허임 역시 이런 식으로 등용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허준과 허임의 만남

   그는 선조~광해군대에 걸쳐 침구의가로 크게 활약한다. 왕실의 침의로 활동한 기간은 실록상으로는 선조 31년(1598)으로부터 광해군 15년(1623)까지의 26년간으로 그의 나이 29∼54세까지의 기간이다. 이는 그가 20대 후반이라는 젊은 시절부터 거의 일생을 왕실의 침구진료에 참여하였다는 뜻이며, 그의 실력과 꾸준했던 명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군왕들을 진료한 공으로 그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6품에서 당상관으로 파격 승진을 하기도 한다. 또 영평, 양주, 부평, 남양 등 경기지방 수령에 임명되어 여러 차례 벼슬을 지내기도 하였다.

허준과 허임,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기록도 있다. 두 사람의 관계와 관련하여 선조37년(1604) 9월23일의 왕조실록은 눈여겨볼 만한 장면이다.

밤에 선조에게 갑작스런 편두통이 발작한다. 입시한 의관 허준에게 선조가 묻는다.
“침을 맞는 것이 어떻겠는가?”
허준이 아뢴다.
“여러 차례 침을 맞는 것이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증세가 긴급하니 상례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침의들은 항상 ‘반드시 침으로 열기(熱氣)를 해소시켜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말합니다. 소신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눌러보아 아픈 곳을 혈자리로 삼음)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병풍이 쳐지고, 남영(南嶸)이 혈자리를 정하고, 허임이 침을 놓는다. …한달 뒤, 대대적인 포상이 따른다. 어의 허준에게는 숙마 1필이 하사되고, 허임과 남영은 6, 7품의 관원에서 당상관으로 파격 승진을 하게 된다.

왕실에서의 침구치료 장면을 담은 기록이다. 상당히 좋은 결과를 가져온 성공적인 공동진료였다. 당시 왕실에서는 여러 어의와 침의들이 함께 진료에 임하는 것이 상례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어의 허준이 선조의 병에 침을 맞아도 좋을 것인지를 판단하는데, 허임의 견해를 긍정하여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두 사람 사이에 평소 침구에 관한 토론이나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 이미 노련한 대학자였던 허준에 비한다면 허임은 20여년이나 연하인 풋내기 침의에 불과했다. 그러나 허준은 침구학술에 있어서 허임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인다. 이러한 상호교류와 신뢰는 이 시대의 침구학 발전을 이끈 발판이 아니었을까?

허임이 침의로 왕실에서 활동을 시작하던 때는 허준이 ‘동의보감’의 찬집에 들어간 직후(1598년)의 일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새로운 의학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젊은 허임은 대학자 허준을 만나게 되었고, 또 그 영향권 내에서 왕실진료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그의 침구의학 형성 뿐 아니라 나중의 ‘침구경험방’ 저술에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젊은 허임이 당대의 명의 허준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실용성 뛰어난 ‘침구경험방’

   30여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동의보감’ 침구편과 ‘침구경험방’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두 책의 구성방식을 잠깐 살펴보자. ‘동의보감’에서는 책 맨 뒤에 침구편을 별도로 두었는데 여기서는 침구이론과 경혈을 중심으로 논하고, 질병별 침구치료에 대한 내용은 각 편에 분산 기록하는 이중 구성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약물과 침구를 병행하여 종합적으로 치료하기에 편리한 점이 있다. 분량상 ‘동의보감’ 전체에서 침구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사실은 ‘동의보감’이 종합의서를 지향하고는 있지만, 다분히 약물을 위주로 쓰면서 침뜸치료는 보조로 사용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에 비해 침뜸만 전적으로 논한 ‘침구경험방’은 실제 침구치료에 써먹을 수 있는 간결성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 침구서를 지향한다. 그리하여 침구이론의 요약 및 질병별 침뜸치료에 대한 임상경험을 최대한 살리면서 서술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침구임상가 허임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의 동시대에 연이어 나온 두 책은 각기 침구이론과 임상에 나름의 체계를 가지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각자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마치 궁합이 잘 맞는 한 쌍의 부부와 같은 침구문헌인 셈이다. 뒷날 청대에 이 두 책을 중심으로 ‘침구집성’이라는 책이 나오게 되는 것도 이런 보완적 가치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침구경험방’은 우리나라 의서로 해외에서 간행된 몇 안 되는 책 중에 하나다. 대략 17세기 말∼18세기 초엽 조선에 유학 왔던 일본 오사카 출신의 의사 산천순암(山川淳菴)은 당시 조선의 의가들이 침구를 중시하는 것과, 그들이 한결같이 허임의 침구방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조선의 침구학이 당시 중국에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고 하면서 조선침구학을 높이 평가한다.

후일에 그는 ‘침구경험방’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가며, 이를 바탕으로 향보(享保) 10년(1725) 일본판 ‘침구경험방’이 간행된다. ‘침구경험방’은 후일 안영(安永) 7년(1778)에도 간행됐다. 참고로 ‘동의보감’이 일본에서 1724년, 1799년 두 차례 간행된 것과 비교할 때 흥미로운 일이다.

중국에서도 최근 한국, 중국, 일본의 학술가치가 높은 전통의학 서적을 발간하는 가운데, ‘침구경험방’을 침구선본의서로 선정하여 간행하였다. 아울러 개요를 통해 “조선에서 편찬한 침구전문서의 효시로… 전 책의 내용이 간명하고, 조리가 분명하며, 독특한 특색을 갖추고 있어서 침구임상에 실용성이 있는 참고서다”라는 평가를 싣고 있다.

 

▶침구경험방 본문해설

머리는 차게, 배는 따뜻하게

   ‘침구경험방’의 서문은 여러 가지 면에서 허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이를 통해 그가 의학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과 자세를 몇 가지 살펴보자.

1. 먼저 병을 잘 살피고(先察病)나서 치료하라.

허임은 질병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면 병은 어떻게 생기나? 그는 ‘내경’의 “사기(邪氣)가 모이는 곳엔 정기(正氣)가 반드시 허약하다”라는 구절을 질병의 발생 기전으로 본다. 그는 이 구절을 부연하여 질병의 원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즉 “사람의 병은 다 먹고 마시는 것에 절도를 잃거나, 술과 성생활을 과도히 하여, 허약함을 타고 풍한서습(風寒暑濕)의 사기가 경락에 녹아들어와 영위가 행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침구치법은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치법관은 “침구로 허약한 것은 보태고 실한 것은 덜어(補虛瀉實), 그 기혈을 조절해주는 것(調其氣血)”이라는‘동인경’의 언급을 인용한다. 이는 침구치료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아울러 몇가지 빈발 병증에 대한 감별진단을 직접 예시하며 병기 및 병태에 대한 설명을 보충한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색의 관찰을 통해 한열을 진단〉

  • 푸른색이 많으면 통증이 있고, 검은색이 많으면 풍비(風痺)다. 흰색이 많으면 한증이고, 황적색이면 열증이다.
    〈한과 열의 병태〉
  • 한→ 한이 많으면 근이 땅기고 뼛골이 아프다.
    배는 더워서 생기는 통증이 없다(腹無熱痛).
  • 열→ 열이 많으면 근이 늘어지고 뼛골이 마른다.
    머리는 차서 생기는 통증이 없다(頭無冷痛).
    〈풍과 농과 담의 병태〉
  • 풍(風)→ 통증이 잘 옮겨다니고 자주 변한다.
  • 농(膿)→ 통증이 한 곳에 있고, 살갗이 벌겋고 열이 있다.
  • 담(痰)→ 혹은 피부 바깥으로 붓기도 하고 가렵지도 아프지도 않다.

    2. 임기응변 할 줄 아는 의사가 되라.

    허임은 “의자(醫者)는 의야(意也)”라는 구절을 인용한다. 물론 이 구절은 의사가 지녀야 할 일반적인 덕목의 하나로 의가들이 즐겨 쓴 말이다. 허준도 ‘동의보감’에 이를 인용한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 하나는 의사가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기응변의 의미로 때에 따라 알맞은 치료를 하라는 의미다.

    허임은 “의자(醫者)는 의임기응변(宜臨機應變)”이라고 후자의 뜻으로 풀고 있다. 그는 의사에게는 무엇보다 인체와 질병의 역동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함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는 꽉 막혀서 변화를 모르는 의사라면 질병을 낫게 하기를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함께 병에 대해 얘기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몇 차례 쓰고 있는 “생각을 움직여 바꾼다(運意轉換)”는 말도 이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3. 침구기법을 손에 완전히 익혀라.

    허임은 당대 제일의 침구임상가답게 마음으로 체득하고 손이 거기에 응해야 한다(得之於心, 應之於手)고 말한다. 마음과 손이 서로 응하는 경지를 요구한 것이다. 아울러 자와 컴퍼스는 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재주는 줄 수 없다(能與人規矩, 不能與人巧)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침뜸의 기술은 부단한 노력에 의해 연마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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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증상은 오장육부에 달려 있다

       병증의 구분은 치료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필연적 과정이다. 허임의 경우는 여러 병증을 오장육부로 카테고리화 한다. 이러한 노력은 다른 침구의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면이다.

    그는 ‘소문·지진요대론편’의 오장병기(五臟病氣)를 중시하여, 그 내용중 일부를 자신의 의견으로 바꾸어 변용을 시도하고 있다.

  • 심(心)→ 제반 통증, 가려움, 창양은 다 심에 속한다.
  • 간(肝)→ 제반 풍증상으로 엎어질 듯하고 어질어질한 것은 다 간에 속한다.
  • 비(脾)→ 제반 습증으로 붓고 그득한 것은 다 비에 속한다.
  • 폐(肺)→ 제반 기침과 숨찬 것은 다 폐에 속한다.(허임이 바꿈)
  • 신(腎)→ 제반 근골의 통증은 다 신에 속한다.(허임이 바꿈)
  • 담(膽)→ 제반 절(節)은 다 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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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을 알면 침 치료가 보인다

       허임은 “부분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몸의 23개 부위에 대해 경락, 장부의 연관관계를 요약하여 정리하고 있다. 이는 인체를 유기적으로 인식한 것이며, 임상에서 활용하기에 매우 편리한 장치다. 예를 들어 머리의 질병이라면 독맥, 방광경, 담경, 위경 등에 있는 어느 경혈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병이 있는 부위의 경락을 따져서 그 경락에 속하는 혈자리를 선택하는 방법을 일명 ‘순경취혈법’이라 하는데, 침구임상에서 활용도가 높은 방법이다.

  • 머리는 독맥, 방광경, 담경, 위경에 속한다.
  • 이마는 독맥, 간경, 방광경에 속한다.
  • 눈은 간경에 속한다(흰동자는 폐에 속하고, 동인은 신에 속하고, 대소자는 심에 속하고, 위아래 눈꺼풀은 비위에 속하고, 검은동자는 간에 속하고, 흑백간은 비에 속하고, 안쪽 눈초리는 방광 및 대장에 속하고, 바깥쪽 눈초리는 담경 및 소장에 속한다).
  • 얼굴은 심, 대장, 위경에 속한다.
  • 코는 폐와 독맥에 속한다.
  • 입은 비장에 속한다.
  • 이는 신장에 속한다(윗잇몸과 입술은 위에 속하고, 아랫잇몸과 입술은 대장에 속한다).
  • 위 턱은 위에 속한다.
  • 혀은 심, 신, 비경에 속한다.
  • 목구멍은 위, 신, 심경에 속한다.
  • 가슴은 상초, 폐, 심, 심포, 임맥에 속한다.
  • 배는 중초, 비, 간, 신경, 임맥에 속한다.
  • 아랫배는 하초, 간, 신경에 속한다.
  • 옆구리는 간경, 담경에 속한다.
  • 등은 방광, 독맥에 속한다.
  • 어깨는 대장, 소장, 삼초경에 속한다.
  • 팔다리는 비, 위에 속한다.
  • 살은 비가 주한다.
  • 피부의 털은 폐가 주한다.
  • 음성은 폐가 주한다.
  • 아홉 구멍(九竅)은 심장에 속한다.
  •  

    경락은 쉼없이 흐르고…… 막히면 병이 된다!

       경락은 우리 인체에 그물처럼 퍼져 있는 기혈의 운행 통로다. ‘영추·해론(海論)’에서 “12경맥은 안으로 장부에 속해 있고, 밖으로는 사지와 관절에 연결된다”고 한 것은 경락이 인체의 모든 구성 부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주는 하나의 연결망이라는 의미다.

    허임은 경락의 기가 시간에 따라 쉼없이 우리 인체를 순행하는 것을 계곡을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 따라서 질병은 마치 장애물이 있어 물이 흐르지 못하게 된 것과 같고, 치료라는 것은 그 막힌 것을 열어서 소통시키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그 증세를 잘 관찰하여 때에 따르고 변화에 응해야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 몸의 질병은 경락에 반영되며, 침구라는 자극을 통해 잘못된 기혈의 흐름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곧 치료라는 의미다.

    경락 계통은 여러 가지로 구성되는데 ‘동의보감’에서는 12경맥(經脈), 기경8맥(奇經八脈), 15낙맥(絡脈), 12경근(經筋) 등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고, 허임의 ‘침구경험방’에서는 간결하게 가장 중요한 12경맥을 위주로 설명한다.

  • 12경맥의 흐름과 배열 방식
    12경맥은 수삼음경(手三陰經), 수삼양경(手三陽經), 족삼음경(足三陰經), 족삼양경(足三陽經)으로 이루어졌다. 즉 모든 사람의 팔과 다리에는 각각 3양맥, 3음맥이 있어서 합해서 12개의 경맥이 있다는 말이다.

    수삼음경은 수태음폐경·수소음심경·수궐음심포경이고, 수삼양경은 수양명대장경·수태양소장경·수소양삼초경이며, 족삼음경은 족태음비경·족소음신경·족궐음간경이고, 족삼양경은 족양명위경·족태양방광경·족소양담경이다. 수와 족이라 한 것은 팔과 발로 경맥이 흐른다는 것을 말하고, 삼음, 삼양은 경맥의 특성을 표시하는 하나의 부호로 장부와 연관을 맺고 있다.

    이들 12경맥의 흐름을 살펴보자. 수삼음경은 가슴에서 손으로 가고(從胸走手), 수삼양경은 손에서 머리로 가며(從手走頭), 족삼양경은 머리에서 발로 가고(從頭走足), 족삼음경은 발에서 배(從足走腹)로 흐른다. 12경맥의 흐르는 순서는 이러한 규칙에 따라 그 처음 시작은 수태음폐경→ 수양명대장경→ 족양명위경→ 족태음비경→ 수소음심경→ 수태양소장경→ 족태양방광경→ 족소음신경→ 수궐음심포경→ 수소양삼초경→ 족소양담경→ 족궐음간경→다시 수태음폐경의 순서로 낮에 25회, 밤에 25회로 쉼없이 흐르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영추·경맥편’이나 ‘동인경’의 내용을 받아들인 것이다.

    ‘침구경험방’에서는 ‘십이경초혈(抄穴)’이란 항목 아래 실제로는 12경맥에 임맥(任脈), 독맥(督脈)을 포함해서 정리하고 있으며, 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다. 이는 ‘동의보감’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임맥과 독맥은 기경8맥에 속하는 경맥이다. 기경8맥은 12경맥 사이를 가로 세로로 흐르며 12경맥의 넘쳐난 맥기를 모아두는 조절작용을 한다. 즉 마치 강와 호수의 관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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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경맥의 중요 혈(穴)자리

       경혈은 침을 놓고 뜸을 뜨는 자리, 즉 경락선상의 요충지라 할 수 있으며 수혈(穴), 공혈,(孔穴) 혈위(穴位)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혈의 배열순서>
    역사적으로 볼 때 수혈을 정리한 방식은 침구서들마다 차이를 보인다.
    허준과 허임은 왕유일(987?∼1067)의 ‘동인수혈침구도경’(보통 ‘동인경’으로 약칭)은 경혈 공부에 주된 텍스트로 삼았다. 이 책은 조선 전 시기를 통해 경혈을 연구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허준과 허임 역시 이 책을 위주로 경혈들을 정리하고 있다.

    경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경혈의 위치, 침 놓는 깊이, 뜸의 장수, 침을 꽂아 놓는 시간, 금기나 부작용, 일부 주치하는 병증 언급, 오수혈의 경우 혈성(穴性), 경혈의 이명 등이다.

    허임이 ‘침구경험방’에서 언급하고 있는 총 수혈수는 150개혈(쌍혈:127개, 단혈:23개)인데, 이는 ‘갑을경’이 349혈, ‘동인경’이 354혈, ‘동의보감’에서 156혈을 수록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많은 경혈을 제외하고 일부만 선택하여 간결하게 수록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침구경험방’에서 중요하게 여겨 뽑아 정리한 경혈들을 열거해본다.

    1. 수태음폐경

    소상(少商), 어제(魚際), 태연(太淵), 경거(經渠), 열결(列缺), 공최(孔最), 척택(尺澤), 중부(中府) ― 8개의 경혈 정리

    2. 수양명대장경

    상양(商陽), 이간(二間), 삼간(三間), 합곡(合谷), 양계(陽谿), 곡지(曲池), 견우(肩), 영향 (迎香) ― 8개의 경혈 정리

    3. 족양명위경

    여태(兌), 함곡(陷谷), 충양(衝陽), 해계(解谿), 삼리(三里), 기충(氣衝), 천추(天樞), 대영 (大迎), 두유(頭維) ― 10개의 경혈

    4. 족태음비경

    은백(隱白), 대도(大都), 태백(太白), 공손(公孫), 상구(商丘), 삼음교(三陰交), 음릉천(陰陵泉), 혈해(血海) ― 8개의 경혈

    5. 수소음심경

    소충(少衝), 소부(少府), 신문(神門), 통리(通里), 영도(靈道), 소해(少海) ― 6개의 경혈 정리

    6. 수태양소장경

    소택(少澤), 전곡(前谷), 후계(後谿), 완골(腕骨), 양곡(陽谷), 소해(小海), 천창(天窓), 청궁(聽宮) ―8개의 경혈 정리

    7. 족태양방광경

    지음(至陰), 통곡(通谷), 속골(束骨), 경골(京骨), 신맥(申), 곤륜(崑崙), 위중(委中), 의희(), 고황수(膏兪), 상료(上), 차료(次), 중료(中), 하료(下), 대여(大), 풍문 (風門), 폐수(肺兪), 심수(心兪), 격수(膈兪), 간수(肝兪), 담수(膽兪), 비수(脾兪), 위수(胃兪), 삼초수(三焦兪), 신수(腎兪), 대장수(大腸兪), 소장수(小腸兪), 방광수(膀胱兪), 곡차 (曲差), 찬죽(竹), 정명(睛明) ― 30개의 경혈 정리

    8. 족소음신경

    용천(涌泉), 연곡(然谷), 태계(太谿), 조해(照海), 부류(復溜), 음곡(陰谷) ― 6개의 경혈 정리

    9. 수궐음심포경

    중충(中衝), 노궁(勞宮), 대릉(大陵), 내관(內關), 간사(間使), 곡택(曲澤) ―6개의 경혈정리

    10. 수소양삼초경

    관충(關衝), 액문(液門), 중저(中渚), 양지(陽池), 외관(外關), 지구(支溝), 천정(天井), 예풍(風), 사죽공(絲竹空), 이문(耳門) ― 10개의 경혈 정리

    11. 족소양담경

    규음(竅陰), 협계(俠谿), 임읍(臨泣), 구허(丘墟), 현종(懸鍾), 양보(陽輔), 양릉천(陽陵泉), 환도(環跳), 경문(京門), 일월(日月), 견정(肩井), 풍지(風池), 목창(目窓), 본신 (本神), 객주인(客主人), 청회(聽會), 동자료(瞳子), 풍시(風市), 당양(當陽) ― 19개의 경혈 정리

    12. 족궐음간경

    대돈(大敦), 행간(行間), 태충(太衝), 중봉(中封), 곡천(曲泉), 장문(章門), 기문(期門) ― 7 개의 경혈 정리

    13. 독맥

    소료(素), 수구(水溝), 신정(神庭), 상성(上星), 백회(百會), 풍부(風府), 아문(門), 대추(大椎), 신도(神道), 요수(腰兪) ― 10개의 경혈 정리

    14. 임맥

    승장(承漿), 전중(亶中), 구미(鳩尾), 거궐(巨闕), 중완(中脘), 수분(水分), 신궐(神闕), 음교(陰交), 기해(氣海), 석문(石門), 관원(關元), 중극(中極), 곡골(曲骨) ― 13개의 경혈 정리

    ※이상에 소개된 경락·경혈은 <별첨자료 A>(220~229페이지)에 그림과 함께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새로운 경혈을 찾아서

       ‘침구경험방’과 ‘동의보감’은 별혈(別穴)의 보고다. 별혈은 경외기혈(經外奇穴)의 다른 이름인데, 기존 경락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경혈들을 말하는 것이다.

    허준은 별혈의 기준에 대해, ‘동인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여러 방서에 산재하는 수혈’이라 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40개의 별혈을 수록하고 있고, ‘침구경험방’에서는 이를 더 보충하여 58개에 이르는 별혈을 수록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별혈을 집록하고 있는 것은 타 침구서에서는 흔치 않은 일로 신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허임은 이들 별혈을 머리(9혈), 등과 어깨(11혈), 상지(15혈), 흉복부(8혈), 하지(14혈)의 순으로 부위에 따라 정리하고 있다. 다음은 ‘침구경험방’에 수록되어 있는 별혈들이다.

    신총(神聰)4혈, 당양(當陽)2혈, 태양(太陽)2혈, 명당(明堂)1혈, 미충(眉衝)2혈, 비준(鼻準)1혈, 이첨(耳尖)2혈, 취천(聚泉)1혈, 해천(海泉)1혈, 아시혈(阿是穴), 숭골(崇骨)1혈, 백로(百勞)2혈, 정궁(精宮)2혈, 갑봉(胛縫)2혈, 환강(環岡)2혈, 요안(腰眼)2혈, 하요(下腰)1혈, 회기(回氣)1혈, 낭저(囊底)1혈, 난문(門)2혈, 장요(腸)2혈, 견주(肩柱)2혈, 주첨(尖)2혈, 용현(龍玄)2혈, 여세(呂細)2혈, 중천(中泉)2혈, 이백(二白)4혈, 중괴(中魁)2혈, 오호(五虎)4 혈, 대도(大都)2혈, 상도(上都)2혈, 중도(中都)2혈, 하도(下都)2혈, 사봉(四縫)좌우16혈, 십선(十宣)10혈, 대공골(大空骨)2혈, 소공골(小空骨)2혈, 방정(旁廷)2혈, 통관(通關)2혈, 직골(直骨)2혈, 음도(陰都)2혈, 기문(氣門)2혈, 포문(胞門)1혈, 자호(子戶)1혈, 자궁(子宮)2혈, 학정(鶴頂)2혈, 슬안(膝眼)2혈, 풍시(風市)2혈, 영충(營衝)2혈, 누음(漏陰)2혈, 교의(交儀)2혈, 음양(陰陽)2혈, 음독(陰獨)8혈, 족내과첨(足內尖)2혈, 족외과첨(足外尖)2혈, 독음(獨陰)2혈, 내대충(內大衝)2혈, 갑근(甲根)4혈

    허임은 실제 치료에 있어서도 이들 별혈을 적극 활용하였다. 실제 치료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외기혈은 20여혈에 이르며, 특히 독음혈은 그가 여러 병증에 애용한 혈이었다. 이러한 의욕적인 경외기혈의 활용은 기존 정경혈(正經穴)을 이용한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는 허임의 창의적인 치료정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은 ‘침구경험방’치료문에서 병증별로 선혈하고 있는 별혈을 모아본 것인데 이는 허임 자신이 직접 임상에 사용하였으리라 여겨진다.

     
    근육·관절통은 눌러서 아픈 곳에 침뜸을 놓는다

       아시혈(阿是穴)이란 눌러 보았을 때 아픈 곳을 혈자리로 삼는 것을 말하며, 바로 그 자리에 침을 놓거나 뜸을 떠서 병을 치료하게 된다. ‘아시’라는 말은 ‘아야! 거기가 맞아’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손사막이 처음으로 정의하였는데, ‘영추·경근(經筋)’편의 “아픈 곳을 혈자리로 한다(以痛爲輸)”는 개념이 바탕이 되었다. 후세에는 이를 천응혈(天應穴)이라고도 하였다.

    허임은 아시혈에 대해 “해당처를 말한다”고 하며 별혈에 넣었다. 그는 아시혈을 사용하는 치료법을 일러 ‘수통수침법(隨痛隨鍼法)’, 즉 아픈 곳을 따라 침을 놓는 방법이라 칭하면서, 실제 치료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가 아시혈을 많이 사용한 병증을 보면 주로 목이 뻣뻣한 증, 손과 팔의 근이 뒤틀리며 시고 아픈데, 낙상이나 타박상, 팔꿈치, 손목이 시면서 아픈 증상 등 오늘날로 치면 근육·관절 관련 통증에 다용하였다.

    또한 아시혈점을 탐색하는 요령에 대해 “의사가 왼손 엄지로 근(筋)이 뭉쳐 통증이 있는 부위를 꽉 눌러 움직이지 않게 하고, 침으로 근이 뭉친 곳을 관자(貫刺)하여 근이 상한 곳에 침봉이 이르면 시고 아픈 것을 참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천응혈이다. 통증에 따라 침을 놓으면 신효를 본다”라고 설명한다.

    아시혈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치법은 최근 서의학에서 근막통증증후군, 섬유근통 등의 병증에 방아쇠점(Trigger Point), 압통점(Tender Point)의 개념을 이용한 국소치료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볼 때 많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있는 일이다.

    이외에 오수혈(五穴)이란 게 있다. 오수혈이란 12경맥에 속해 있는 각 경맥의 혈자리 중에 팔꿈치와 무릎 관절 이하에 위치하는 정(井), 형(滎), 수(), 경(經), 합(合) 다섯 개의 혈자리를 말한다. 오행이론에 따라 다섯가지 성질을 갖게 되는데, 침구임상에 매우 중요한 경혈들로 허임 역시 빈번히 사용하였다.

    ‘내경’에서는 “경맥의 기가 나오는 곳(出)이 정혈이고, 머무는 곳(溜)이 형혈이고, 주입되는 곳(注)이 수혈이고, 흐르는 곳(行)이 경혈이고, 흘러들어가는 곳(入)이 합혈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맥기의 흐름을 물이 발원지에서 시작하여(정), 가늘게 조금씩 흐르고(형), 적은 데서 많은 데로, 얕은 데서 깊은 곳으로 흘러 점차 왕성하게 흐르고(수), 큰 강을 이루어 물이 창통하게 되어(경),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합) 것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다.

    ‘난경·68난’에는 오수혈이 다스리는 병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정혈은 명치끝이 더부룩한 것을 치료한다(主心下滿).
  • 형혈은 몸의 열을 치료한다(主身熱).
  • 수혈은 몸이 무겁고 관절이 아픈 것을 치료한다(主體重節痛).
  • 경혈은 천식과 기침, 추웠다 더웠다 하는 증상을 치료한다(主喘咳寒熱).
  • 합혈은 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설사하는 증상을 치료한다(主逆氣而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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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뜸을 금하는 혈자리와 주의점

       고대의 금침혈은 후세로 가면서 깊이 찌르면 안 되는 혈자리도 포함하게 됨에 따라 숫자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들 혈자리들은 주로 중요한 장기나 동맥 근처에 위치하여 침의 깊이나 방향이 잘못되면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러나 현대에 오면서 침도구가 발전하고 해부 지식도 명확해져 옛날에는 금침혈로 여기던 혈에도 침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금구혈도 마찬가지다. ‘동의보감’과 ‘침구경험방’ 두 책 모두‘의학입문’에서 인용한 금침혈 34혈과 금구혈 49혈을 똑같이 수록하고 있다.

    <침을 금하는 혈자리>
    신정, 뇌호, 신회, 옥침, 낙각, 승영, 노식, 각손, 승읍, 신도, 영대, 운문, 견정, 전중, 결분, 상관, 구미, 오리, 청영, 합곡, 신궐, 횡골, 기충, 기문, 승근, 수분, 회음, 석문, 인영, 유중, 연곡, 복토, 삼음교, 삼양락

    <뜸을 금하는 혈자리>
    아문, 풍부, 천주, 승광, 임읍, 두유, 찬죽, 정명, 소료, 화료, 영향, 관료, 하관, 인영, 천용, 천부, 주영, 연액, 유중, 구미, 복애, 견정, 양지, 중충, 소상, 어제, 경거, 양관, 척중, 은백, 누곡, 조구, 독비, 음시, 복토, 비관, 심맥, 위중, 은문, 심수, 승읍, 승부, 계맥, 이문, 석문, 뇌호, 사죽공, 지오회, 백환수

    다음은 ‘침구경험방’에서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혈자리로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 경거∼ 뜸을 뜨면 정신을 상한다.
  • 척택∼ 침을 깊이 놓지 마라.
  • 합곡∼ 임신부에게는 금침한다.
  • 삼음교∼ 임신부에게 시술하면 태를 상할 수 있다.
  • 소해∼ 두통에는 뜸을 뜨지 마라.
  • 폐수, 간수, 신수∼ 각 장기에 찌르면 각각 3, 5, 6일에 죽는다.
  • 견정∼ 깊이 찌르지 마라.
    한편 침뜸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훈침(暈鍼)과 훈구(暈灸)가 있다. 훈침은 침을 맞고 어지러운 증상이 생기는 것으로 때론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이 차며, 안색이 창백해지고, 메스껍고, 토하고 싶으며, 사지가 싸늘해지기도 한다.

    훈침은 침을 처음 맞는 사람에게 많은데 너무 긴장해서 침을 맞거나, 침 맞는 자세가 나쁠 때, 침자극이 너무 과도할 때, 허약한 체질, 심한 피로, 배가 고플 때, 땀을 많이 흘린 후, 설사 후, 출혈 후에 주로 발생한다. 훈침이 발생하면 즉시 침을 빼고 환자를 편안하게 눕혀 허리띠를 풀어 주고 쉬게 하면서 따뜻한 물 등을 준다.

    침뜸에 꺼려야 할 것
  • 너무 피곤할 때, 너무 배고플 때, 너무 배부를 때, 술을 마신 후, 몹시 놀란 후, 성낸 후, 갈증이 많이 날 때는 침을 놓지 않는다.
  • 뜸에 금할 것 ∼닭·돼지고기, 술과 밀가루, 성생활, 바람을 접촉하지 말고, 노를 발하지 말 것. 만약 삼가 조섭하지 않으면, 비록 귀신이라 해도 낫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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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혈자리 바로잡기

       ‘침구경험방’에는 다른 침구서에는 없는 ‘와혈(訛穴)’이라는 독특한 항목을 책머리에 싣고 있다. 여기서는 경혈의 위치를 잘못 선택하는 경우를 지적하면서, 정확한 취혈을 할 수 있도록 교정해주고 있다. 많은 혈위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임상에서 많이 쓰이는 소상, 합곡, 신문, 견정, 절골, 삼리 등 6개의 경혈을 예로 들고 있다.

  • 소상(少商) ― ‘동인경’에서는 엄지 안쪽의 손톱 모서리에서 부춧잎 간격 정도 떨어진 거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춧잎에도 크고 작은 게 있는데 속의(俗醫)는 손톱에서 실낱 간격만큼만 띄운다. 바른 취혈은 손톱 모서리에서 3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제1절횡문두와 서로 일직선이 되는 곳이다.
  • 합곡(合谷) ― 합곡혈이 양명경 소속이라고 식지에 치우쳐 취혈하지 말고, 엄지와 식지 사이의 움푹한 곳을 취혈해야 한다.

  • 신문(神門) ― 음경(陰經)과 양경(陽經)을 잘 분간해야 한다. 손목 바깥쪽에 있는 뾰족한 뼈 끝(銳骨端)의 태양소장경을 잘못 취혈하면 안 된다.

  • 견정(肩井) ― 어깨 위에 있는 움푹한 곳의 대골(大骨) 앞 1촌반을 세 손가락(2,3,4지)으로 눌렀을 때 중지가 짚어지는 곳이 견정이다. 속의는 어깨 위의 대골 끝자락(大骨端)을 세 손가락으로 눌러 견갑 위에 있는 차골(叉骨) 사이 움푹한 곳에 잘못 취혈한다.

  • 절골(絶骨) ― 절롱골(絶壟骨) 위를 취혈하지 말고, 절롱골 앞의 골육 사이를 취혈해야 한다.
  • 삼리(三里) ― 슬개하 3촌 행골(骨)의 바깥 골변으로부터 옆으로 1촌을 재 해당하는 양 근육 중간의 움푹한 곳을 손으로 눌렀을 때, 발등 위의 태충맥이 뛰지 않는 곳을 취혈해야 효험이 있다.

    <몇몇 경혈의 바람직한 취혈 자세>
  • 곡지 ― 두 손을 가슴에서 마주잡고 취혈
  • 견우 ― 팔을 위로 들고 취혈
  • 음릉천, 음곡, 곡천 ― 무릎을 굽히고 취혈
  • 소해 ― 팔꿈치를 굽히고 머리로 향하도록 취혈
  • 소해, 천정 ― 팔꿈치를 굽히고 취혈
  • 액문 ― 주먹을 쥐고 취혈
  • 환도 ― (옆으로 누워) 밑에 놓인 다리는 펴고, 위에 놓인 다리는 굽히고 취혈
  • 청회 ― 입을 벌리고 취혈
  • 중봉 ― 발을 쭉 뻗어서 취혈
  • 아문 ― 머리를 위로 우러러서 취혈
  • 신도 ― 몸을 굽혀서 취혈
  • 전중 ― 위를 보고 누워서 취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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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의 종류

       ‘영추·구침십이원편’에는 참침, 원침, 시침, 봉침, 피침, 원리침, 호침, 장침, 대침 등 아홉 종류의 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침은 그 길이, 굵기, 모양에 따라 각기 그 쓰임새가 다르므로 용도에 맞게 잘 선택해서 사용해야 한다.

    <구침(九鍼)의 종류와 용도>

  • 참침∼길이는 1.6촌. 침 끝이 크고 예리하다. 주로 양기를 사한다.
  • 원침∼길이는 1.6촌. 침끝이 달걀 모양이다. 분육(分肉) 사이에 있는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한다.
  • 시침∼길이는 3.5촌. 침 끝을 기장이나 조처럼 둥글게 한 것이다. 맥을 눌러 기가 들어가지 않게 하여 기가 이르도록 하는데 사용한다.
  • 봉침∼길이는 1.6촌. 침 날이 세모꼴이다. 오늘날 삼릉침에 해당한다. 고질병을 치료하는데 주로 쓰인다.
  • 피침∼길이는 4촌이고 너비는 2촌. 끝이 칼날 같다. 많이 곪은 것을 째는 데 쓴다.
  • 원리침∼길이는 1.6촌. 굵기는 소의 꼬리털 같고, 둥글고 예리하며 침 날의 가운데는 약간 굵다. 갑자기 생긴 사기를 없앤다.
  • 호침∼길이는 3.6촌. 끝은 모기나 등에 입같이 날카로우며 천천히 놓고 오래 꽂아 둔다. 통비를 치료한다.
  • 장침∼길이는 7촌. 침 끝이 예리하다. 오래된 비증을 치료한다.
  • 대침∼길이는 4촌. 끝은 못과 같으며 침 날은 약간 둥글다. 장기의 물을 빼는 데 쓴다.
    허임은 ‘침구경험방’에서 여러 가지 침을 실제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일부는 구침 중에 나오는 것이며, 일부 다른 침의 이름도 보인다. 다음에 그 예를 들어 본다.

    <허임이 활용한 침의 종류와 해당 병증>
    ①삼릉침(三稜鍼)∼두면부의 제양열기(諸陽熱氣)를 사할 때, 두면풍단(風), 배와 옆구리 및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찌르는 듯 아파서 참을 수 없을 때, 뱃속의 적취 기운이 상하로 다닐 때, 풍단(風丹) 및 화단독(火丹毒)등 주로 사혈을 시행할 때 사용함.

    ②원리침∼팔다리의 근이 뒤틀려 절뚝일 때, 손·발가락 마디가 삔 데, 맥이 미세하거나 혹은 안 나타나는 사람의 경우는 원리침으로 족소음경의 부류혈을 심자한다. 주로 심자할 때 사용.

    ③원침∼변독(便毒)에 원침으로 그 핵을 관자하고 뜸을 뜬다.
    ④사릉철침(四陵鐵鍼)∼창출을 뚫는데 사용. 인체에 사용한 언급은 없음.
    ⑤대침∼배종을 잘못 치료하여 열농하게 된 데, 열농의 붉게 번진 가장자리 등 농을 터뜨릴 때 사용함.
    ⑥세침(細鍼)∼난산의 경우 세침으로 태아의 수심과 족심을 찌른다.
    ⑦화침(火鍼)∼‘내경’에서 말하는 번침법(燔鍼法)으로 침을 불에 달궈서 시술하는 방법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뜸뜨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이용한다고 하였다.

    허임은 다음과 같은 정신질환에 주로 화침을 이용하였다.
    ―귀사(鬼邪)는 13귀혈(十三 鬼穴)에 화침을 이용, 괴질(怪疾)은 신맥, 상성, 곡지혈을 화침으로 7정()함, 저주(咀呪)하는 증상에도 화침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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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뜸에도 보사(補瀉)가 있다

       ‘내경’에서 말한 “남으면 사하고, 부족하면 보한다(有餘者瀉之, 不足者補之)”라는 말은 침뜸보사에 대원칙이다. 침뜸이 병을 치료하는 것도 음양의 허와 실이라는 병리상태를 보사수법을 통해 조정하고 평형을 찾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침의 보사법은 매우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보사법의 유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단식보사법

  • 염전(捻轉)보사법 ― 침을 무지와 식지로 교체하면서 돌려주는 조작에 따른 보사. 무지가 앞으로 식지가 뒤로 가면 보법. 무지가 뒤로 가고 식지가 앞으로 가면 사법.
  • 영수(迎隨)보사법 ― 침을 놓는 방향에 따른 보사. 침끝을 경맥 순행 방향으로 하면 보법. 순행 반대 방향으로 하면 사법.
  • 호흡(呼吸)보사법 ― 침감이 이르게 한 후, 환자의 호흡에 따른 보사. 환자가 숨을 내 쉴 때 침을 꽂고 숨을 들이쉴 때 빼면 보법. 반대로 숨을 들이쉴 때 꽂고 내쉴 때 빼면 사법.
  • 개합(開闔)보사법 ― 침을 뺀 후 침구멍을 막는 것에 따름 보사. 출침시 신속히 침구멍을 막으면 보법. 침구멍을 막지 않거나 침을 흔들어 구멍을 크게 하면 사법.
  • 서질(徐疾)보사법 ― 침을 꽂고 빼는 속도에 따른 보사법. 빨리 꽂고 천천히 빼면 사법, 천천히 꽂고 빨리 빼면 보법.
    2.복식보사법

  • ‘내경’의 보사법 ― 단식보사법을 배합하거나, 손동작(누르고, 돌리고, 밀고)을 배합하는 방법.
  • 소산화법, 투천량법, 양중은음법, 음중은양법, 청룡파미법, 백호요두법 등
    3. 배혈보사법

    배혈보사법(配穴補瀉法)이란 손의 기술을 이용하는 수법(手法)보사와는 달리 혈자리 선택을 통해 보사를 하는 방법이다. 이는 혈자리마다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침구경험방’에서는 역대 의서에 나오는 몇 가지 경우를 인용하고 있지만 규칙화된 체계는 보이지 않는다. 그 예를 들어본다.

  • 눈알이 아프면서 눈물은 안 날 때 ― 중완, 내정을 모두 오래 유침했다가 즉시 사한다.
  • 피를 뱉어 속이 손상된 데 ― 어제사, 척택보 (갑을→천금→자생→신응)
  • 인후는 붓지 않았어도 열이 막고 있어 무엇을 마시면 코로 다시 나올 때 ― 합곡, 연곡을 함께 오래 유침하고 즉시 사한다.
  • 심열이 있어 잠을 못 이룰 때 ― 해계사, 용천보
  • 심장이 아프면서 얼굴이 파랗게 되어 죽으려고 할 때 ― 척택침, 지구사
  • 식갈(食渴) ― 삼초수, 위수, 태연, 열결을 침으로 사한다.
  • 허해서 나는 땀(虛汗) ― 합곡보, 부류보, 하삼리보
  • 두통 및 눈병으로 눈이 빨갛게 된 증 ― 모두 사법을 쓴다.
  • 신체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할(不仁) 때 ― 먼저 경골을 취하고, 후에 중봉, 절골을 모두 침으로 사한다.
  • 허한 사람의 구토 ― 기해보
  • 태아가 위로 심장을 핍박하여 답답한 데 ― 보합곡 사삼음교
  • 젖이 안 나올 때 ― 소택보
    4. ‘침구경험방’의 침보사법

    허임은 서문에서 “보사의 방법을 밝히 드러내는 것(發明補瀉之法)”이 책을 저술하는 한 이유라고 말할 정도로 보사법에 관심을 보인다. 그의 침자보사법은 독창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가 어떤 보사방법을 사용하였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5분 깊이를 찔러야 할 혈자리라면 2분을 찔러 넣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2분을 넣고 또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1분을 넣는다. 환자로 하여금 숨을 들이쉬게 하면서 침을 뽑고, 곧바로 손으로 침구멍을 눌러 진기(眞氣)를 보존한다. 이것이 보법이다.”

    “5분 깊이를 찔러야 할 혈자리라면 5분을 찔러 넣고 잠시 멈추었다가, 2분을 뽑고 다시 잠시 멈추었다가, 2분을 뽑고 다시 잠시 멈추었다가, 환자로 하여금 숨을 내쉬게 하면서 침을 뽑아 사기(邪氣)를 이끌어, 맞으면서 빼낸다. 이것이 사법이다.”

    이를 정리하면 허임의 침보사법은, 침을 3단계에 걸쳐 넣고 빼는(進退) 보사법에다가 호흡보사법, 개합보사법을 함께 쓰고 있다. 즉 보법은 3단계에 걸쳐 침을 밀어 넣고, 사법은 3단계에 걸쳐 침을 빼주어, 각각 진기(眞氣)를 보존하고, 사기(邪氣)를 끌어내는 방법을 기본으로 한다. 거기에다 침을 뺄 때 환자의 호흡을 보할 때는 들이쉬게(吸) 하고, 사할 때는 내쉬도록(呼) 하는 호흡보사법을 같이 쓴다. 아울러 보법에서는 침을 뺄 때 침구멍을 눌러주는 개합보사법도 같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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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뜸 바로 뜨는 법

       ①뜸뜨는 적당한 시간
    이른 아침과 오후는 곡기(穀氣)가 허핍한 때이므로 반드시 한 낮에 시행한다.

    ②뜸뜨는 장수의 결정
    뜸뜨는 숫자를 장(壯)이라고 쓰는 것은 뜸봉 한 개의 힘이 어른 한 사람의 힘과 같다고 본 데서 나온 말이다.

  • 사지(四肢)는 단지 풍사(風邪)만 없애면 되므로 7장∼7×7장하면 그친다.
  • 배와 등은 500장:배꼽 아래가 오래 냉한데, 산가(疝), 기가 뭉친 데(氣塊), 복량(伏梁), 적기(積氣)와 같은 증상엔 뜸을 많이 떠야 한다.
  • 거궐, 구미는 비록 흉복의 혈자리지만 7×7장을 넘지 않는다. 만약 쑥을 크게 해서 많이 뜨면 사람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심력이 없게 만든다.
  • 머리와 정수리의 경혈에 뜸을 많이 뜨면 정신을 잃게 된다.
  • 팔뚝과 다리의 혈(臂脚穴)은 침을 많이 놓으면 혈맥이 고갈되어 사지가 가늘게 여위어 무력해지고 정신을 잃는다..
  • 혈자리에는 얕고 깊은 데가 있어, 얕은 경혈에 뜸을 많이 뜨면 반드시 근력을 상하게 되므로 3장, 5장, 7장에서 그친다.
    ③쑥의 작용에 대하여
    허임은 쑥의 성질에 대해 “열이 있을 때 뜸을 뜨면 그 열을 발산시키고, 찰 때 뜸을 뜨면 그 찬 것을 온화하게 해준다. 또한 약물이 들어가면 상행하고, 뜸을 뜨면 하행한다”고 말한다.

    ④뜸을 뜬 후의 관리법
    뜸을 뜬 후 생기는 상처를 구창(灸瘡)이라 한다. ‘자생경’에서는 뜸을 뜬 후 뜸자리가 헐어야 병이 낫는다고 보았고, 심지어 고름이 나야 효과가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뜸의 양이 많거나 자극이 세면 상처가 남을 뿐 아니라 덧날 수가 있으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물집이 잡힌 정도는 터지지 않으면 자연히 흡수된다. 그러나 구창이 오래도록 낫지 않으면 박하, 복숭아나무 가지, 버드나무 가지 등을 달인 물로 씻어준다.

    ⑤ 뜸의 보사법
  • 뜸의 보법 ― 뜸쑥이 살에까지 타들어가 저절로 꺼질 때까지 기다린다.
  • 뜸의 사법 ― 뜸쑥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살에 이르기 전에 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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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가지 약물을 이용한 뜸법

       뜸법 중 쑥을 직접 피부 위에 놓고 뜸을 뜨는 것을 ‘직접구’라 하고, 피부 위에 놓지 않고 여러 가지 약물을 놓고 그 위에 뜨는 방법을 ‘간접구’라 한다.

    ①마늘뜸법
    〈적응증〉 많이 아픈 종독, 아프지는 않고 마목한데, 마늘을 놓고 그 위에 뜸을 뜨면 울체된 독을 끌어내주는 효능이 있다.

    〈방법〉 마늘을 3분 정도 두께로 썰어 종두 위에 놓고, 쑥으로 뜸을 뜬다. 다섯 번을 뜨고 마늘 조각을 간다. 창(瘡)이 십여개 연속하여 나 있으면 한 군데를 선택하여 마늘을 이겨서 찧은 것을 환처에 펴고, 쑥을 놓고 뜸을 뜬다. 만약 종기의 색이 희고 농이 들지 않은 사람은 날과 기간을 불문하고 뜸을 많이 뜬다.

    ②부자뜸법
    〈적응증〉 뇌루(腦瘻)와 종기(諸癰腫)가 견고한 경우에 쑥을 부자 위에 붙이고 뜸을 뜬다.

    〈방법〉 부자를 바둑알 두께로 종기 위에 바로 붙이고 약간의 침으로 부자를 적신 후 쑥을 부자 위에 놓고 뜸을 떠 열이 스미게 한다. 부자가 마르려고 하면, 다시 침으로 적시고 뜸을 떠 쑥기운이 스미게 한다. 부자가 마르면 바로 바꾸어 준다.

    ③진흙뜸법
    〈적응증〉 종기가 등과 양 견갑간에 생겨 혹 아프거나 가려운데, 처음엔 좁쌀만 하지만 소홀히 하면 10일이 못 되어 죽는다.

    〈방법〉 깨끗한 황토와 물을 이겨서 두께는 2분으로 하고 가로세로 1촌반 정도 크기로 떡을 만들어 종기 위에 붙이고, 쑥을 크게 하여 흙떡 위에 놓고 뜸을 뜨되 한 번 뜰 때마다 바꿔준다. 만일 종기가 좁쌀만할 때는 뜸을 7장 뜨면 낫지만 종기가 엽전 크기 정도면 큰 쑥을 밤낮 그치지 말고 나을 때까지 한다.

    ④소금뜸법

  • 곽란에 소금을 배꼽에 채우고 2×7장 뜸을 뜬다.

  • 산기(疝氣)가 위로 치밀 때 ― 밀가루를 물에 개 떡을 빚어 배꼽에 놓고 볶은 소금으로 두툼하게 5분을 채우고 뜸쑥을 크게 하여 약간 따뜻해질 때까지 100∼500 장 뜸을 뜬다. 매년 봄 가을로 뜸을 뜬 후 9일을 연이어 밀실에 거하면서 출입과 주·색, 냉물을 삼가면 신효가 있다.
    간접뜸법에는 이 외에도 생강, 약전국(두시), 유황, 상지 등의 여러 약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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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항 뜨는 법

       부항법은 항아리나 죽관, 컵 등의 부항단지를 피부 표면에 대고 흡력을 발생시켜 피부가 빨려 올라오게 하는 치료방법인데, 이는 혈맥을 확장시켜 국부의 증상을 개선하고 인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작용이 있다. 오늘날은 부항컵을 붙이고 공기를 빼내는 방법을 주로 쓰지만, 옛날에는 열을 이용하여 부항단지 내의 공기가 부풀게 한 후 피부에 대 공기온도가 내려가면서 생기는 압력을 많이 이용하였다.

    ‘침구경험방’에 언급되고 있는 ‘부항구’란 뜸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쑥을 태워서 생긴 음압으로 부항을 붙이는 화관법(火罐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허임은 단순부항법보다는, 부항을 댈 부위에 먼저 삼릉침으로 찌른 후 부항을 붙여 피를 빼내는 자락부항법(刺絡撥罐法)을 많이 활용하였다. 그가 이 방법에 대해 한 설명을 보자.

    “몸체가 긴 부항을 쓰되 부항구는 세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능히 독을 빨아낼 수 있다. 아픈 곳마다 삼릉침으로 4∼5차례 찔러 부항입구 안에 대고 부항구를 7차 하되 아픈 곳 마다 침을 놓고 부항구를 한다. 여러 차례 효과를 보았다.”

    특히 요배통을 비롯한 통증치료에 자주 이용하였다.

     
    나쁜 피를 빼는 법

       침을 찔러 피를 빼내주는 방법인데, 일명 사혈법(瀉血法) 또는 방혈법(放血法)이라고도 한다. 의학사적으로는 유완소(1110∼1200)나 장종정(1156∼1228) 등이 열성질환에 많이 이용하였는데, 이는 출혈이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침구경험방’에서도 여러 병증에 이 침법을 처방하는데, 허임 역시 주로 열이 있는 병증에 사용하고 있다. 노인의 경우는 출혈을 많이 하면 안되지만, 그래도 출혈해야 할 경우에는 시행한다고 하였다. 다음은 출혈법을 사용한 예들이다.

  • 두면부에 열이 극렬하여 내려가지 않은 사람 ― 명주끈으로 목을 살짝 묶어 태양과 당양의 혈락이 돋아나게 하고 삼릉침으로 그 혈락을 관자하여 피를 빼준다.
  • 머리와 눈이 옹종(頭目癰腫)하고 흉협이 지만(支滿)한데 ― 팔꿈치 안쪽의 혈락 및 함곡혈에 출혈을 많이 시키면 곧 낫는다.
  • 두면부에 풍단(風)이 발작하여 붉게 부어 불이 붙은 듯할 때 ― 삼릉침으로 난자하여 나쁜 피를 많이 빼내주면 얼마 안 가서 좋아진다.
  • 풍목광란(風目爛) ― 태양, 당양, 척택에 모두 침을 놓아 피를 빼내주면 신효가 있다.
  • 갑자기 심흉통이 있으면서 땀이 날 때 ― 간사, 신문, 열결, 대돈을 찔러 출혈시킨다.
  • 풍단(風丹) 및 화단독(火丹毒)에 ― 삼릉침으로 난자하여 나쁜 피를 많이 빼낸다. 다음 날에도 붉은 기운이 있는 곳은 피를 빼내준다.
  • 용창(龍瘡)에 ― 용천, 위중을 찔러 출혈하면 곧 효과가 있다.
  • 열병에 열이 심하며, 두통이 있고 물을 찾는데 ― 척택혈 상하의 푸른 혈관(靑絡血)을 관자하여 출혈시키면 신효가 있다.
  • 하마온(蝦瘟)에 ― 삼릉침으로 당양과 태양의 혈락을 관자하여 나쁜 피를 많이 빼내주고, 척택과 위중의 혈락을 침자하여 피를 조금 빼준다.

  •  
    침과 뜸은 함께 쓸 수 없는가?

       “침은 몇 푼 놓고, 뜸은 몇 장 뜬다고 하였는데, 침을 놓고 이어 뜸을 뜨는 것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대해 ‘영추’에서는 “침을 놓을 때는 침만 놓고, 뜸을 뜰 때는 뜸만 떠야 한다. 침을 놓고 나서는 뜸을 뜨지 말고, 뜸을 뜬 다음에는 침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대답으로 침과 뜸을 한 혈자리에 동시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신응경’ ‘의학강목’ ‘의학입문’ 등의 책도 이를 지지한다. 다만 ‘신응경’에서는 배에 있는 혈자리의 경우는 침을 놓고 뜸을 떠서 그 침혈을 고정시킨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침과 뜸을 한 혈자리에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두 치료법을 동시에 사용하면 기력의 소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다소 이견이 있다. 또한 ‘그러면 다른 혈자리에는 동시 시술이 가능한가?’라는 물음도 가능하다.

    허임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직접적인 대답은 없다. 그러나 ‘침구경험방’ 음산문(陰疝門)의 예를 보면, “산기(疝氣)가 위로 치밀어 심복에 급통이 있으면서 숨까지 막힐 때, …갑근혈에 침 1푼 놓고 뜸 3장 뜬다”고 하여, 침과 뜸의 동시 시술에 대해 상당히 융통성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계절과 날씨와 시간에 따른 침뜸치료

       역대 의서에서는 천지 자연의 기운에 합일하는 것을 중시하여, 계절과 날씨 또는 년·월·일·시에 따라 때에 맞게 침을 놓아야 한다는 견해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1.계절에 따른 침 깊이의 차이

    ‘난경’에서는 봄과 여름에는 침을 얕게 놓고, 가을과 겨울에는 깊이 놓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양기(陽氣)가 봄과 여름에는 겉에 있고, 가을과 겨울에는 깊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날씨와 달 모양의 변화에 따른 침치료

    ‘내경’에서는 날씨가 차면 침을 놓지 말고, 따뜻하면 의심하지 말고 침을 놓으며, 달이 둥그레지기 시작할 때에는 사(瀉)하지 말고, 달이 다 둥그레졌을 때에는 보(補)하지 말며, 달이 다 줄어들었을 때에는 치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3.침뜸치료에 좋은 날(吉日)과 하지 말아야 할 날(忌日)

    침이나 뜸을 놓을 때 좋은 날을 택해서 하고, 나쁜 날은 피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여러 침구서에는 인신(人神)이 때에 따라 각 부를 순행하는데, 그 인신이 머무는 부위에는 침뜸을 금하여 인신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동의보감’과 ‘침구경험방’에서는 태을신(太乙神)이 8절기를 나도는 날수를 따지는 도표와 구궁도의 그림 및 날과 달에 따른 인신의 소재, 침뜸의 길일과 기일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왕조실록을 보면, “오늘은 천의일(天醫日)로 침가들이 가장 길일로 여기는 날이다” “내일은 상현일(上弦日)이어서 침가에서 꺼리는 날이다” “길일 하루 전날에 혈단자 (穴單子)를 입계하는 것이 예이다”라는 등의 언급을 빈번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왕실에서 침뜸치료를 하는데 이러한 시간적 금기사항을 많이 따졌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급한 병일 때에는 여기에 구애되지 말고 속히 치료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천금방’이래로 ‘자생경’등에서 볼 수 있는데, 허임 역시 사리에 깊이 통달한 사람은 이러한 인신금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본문 해설을 마치며

       이상 허임의 ‘침구경험방’과 허준의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17세기 조선의 침뜸의학을 대충 살펴보았다. 이들은 이 땅에 침뜸이라는 치료수단의 맥을 이어준 충실한 주자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조선의 침뜸의학은 의미있게 발전했다. 중국의 침뜸의학 서적을 도입하여 간행하고 교육하던 조선초기의 상황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를 소화한 바탕 위에 자체적인 경험을 접목하여 조선 고유의 침구의서를 간행하게 됐다.

    이 땅의 사람들은 일찍부터 침뜸이라는 치료수단을 가지고 질병에 맞서 왔다. 그러기에 “침을 맞는다, 뜸을 뜬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백성으로부터 군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것이었다. 이렇듯 우리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침뜸에 대한 보편적인 관심과 신뢰의 이면에는 조선중기 양 허씨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당대의 의학적 대응은 일정한 한계와 제약을 지닌다. 17세기 조선침뜸의학의 역사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한계는 있지만 지난 시대의 침뜸의학과 그것이 시행되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애정을 가지고 보려고 하였다.

    21세기를 맞은 오늘날 침뜸의학은 바야흐로 동양의 치료술을 넘어 세계인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경락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여러 가지 신침요법의 개발, 해부 및 생리학의 발전에 힘입은 경혈학의 체계화 등 현대의 침뜸의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지속하고 있고, 침뜸진료실 현장 또한 많이 새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전통 침뜸의학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찬동할 수 없지만, 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피상적 이해 또한 경계한다. 전통 침뜸의학의 충실한 계승과 변용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침뜸의학은 민간과 친숙하다. 누구나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보니 올바른 이론에 근거하지 않은 단순한 ‘술(術)’로 함부로 다루어지는 폐해도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인간과 질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숙련된 테크닉이 겸비된 침뜸의학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기본이론에 충실한 침뜸의학을 보여주려는 마음에 이 글을 썼지만 뜻대로 되지 못한 점이 곳곳에 눈에 띈다. 몇 자 글로 심오한 침뜸의학의 세계를 ‘당장 입에 넣을 수 있는 떡’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말로 서툰 글에 변명을 단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1/appendix/b0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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